[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그가 한국 무대에 선지 불과 8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열기가 낯설기만 하다. 가히 K팝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다.

‘브릿팝의 전설’ 오아시스 노엘 갤러거가 단 하루만에 1만 8000여 관객을 홀렸다. 26일 오후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 1전시장 1,2홀에서 열린 내한공연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 라이브 인 코리아’(NoelGallagher‘s High Flying Birds Live inKorea)에서다.

지난해 11월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동명의 공연을 가진 뒤 SNS에 “너희가 최고다. 내년에 보자”라고 남긴 어색한 한국어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쯤되면 노엘 갤러거 역시 한국 MZ 관객들의 환대를 즐기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노엘 갤러거의 인기는 국내 밴드 붐과 더불어 수직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연 때는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진행된 전야제 포함 3회 1만 8000여 관객이 관람했는데 이번 공연은 단 1회 공연에 지난해와 타이 기록을 세웠다. K팝 아이돌이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공연할 때와 비슷한 수치다.

MD상품 역시 매대에 디피된 몇장의 티셔츠 외에는 완판됐다. 과거 콜드플레이, U2 등 좀처럼 내한공연을 오지 않던 밴드들의 MD가 완판되곤 했지만 노엘 갤러거의 내한 공연이 벌써 10번째라는 걸 상기한다면 그의 심상치 않은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1967년생인 노엘 갤러거는 한국나이로 58세다. 1994년 오아시스 1집 앨범으로 데뷔,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그가 데뷔했을 무렵 태어났거나, 아직 세상 구경도 못했을 MZ세대들은 노엘 갤러거의 등장에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인터파크티켓 통계에 따르면, 연령별 콘서트 예매 비율에서 10대가 14.1%, 20대가 57.9%로 총 72%를 차지했다.

오프닝 공연을 맡은 밴드 실리카겔은 “데뷔 전 우상이었던 오아시스의 공연 오프닝을 맡게 돼 영광이다”라고 감격에 벅찬 소감을 전했다. 실리카겔의 보컬 김한주도 1994년생이다.

노엘 갤러거의 인기는 장시간 한우물만 판 그의 뚝심,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마이웨이’ 성향, 그럼에도 약속은 지키는 ‘츤데레 카리스마’ 등에서 비롯된다.

비틀스 이후 최고의 밴드로 평가받던 오아시스는 2009년 팀의 주축인 노엘과 그의 동생 리암 갤러거가 갈등을 빚으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형제는 SNS로 서로를 대놓고 힐난했다.

노엘 갤러거는 언론 인터뷰에서 동생 때문에 그룹 활동을 못하겠다고 공개저격하기도 했다. 옆에서 보는 이들은 조마조마하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그들의 설전은 ‘팝콘각’을 자아내곤 했다.

노엘 갤러거는 오아시스 해체 뒤 자신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를 결성했다. 동생 리암보다 더 한국무대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공연 때부터 한국 공연 전 한국어 인사말을 남겨 팬들을 설레게 했다. 비록 공연에서는 일절 한국어 인사를 하지 않지만 해외 팝스타들이 내한 공연 때 어색한 한국어 인사말 한두마디를 건네는 것보다 더욱 진심이 느껴지는 피드였다.

노엘 갤러거 특유의 ‘마이웨이’ 성향과 ‘츤데레 카리스마’는 공연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이번 공연에 맨체스터 시티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등신대를 무대에 올렸다. 록밴드가 자신의 우상을 무대 위에 세우는 것은 흔치 않다.

그만큼 노엘 갤러거는 자신의 취향에 진심이었다. 그는 지난 5월 영국 런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린 맨시티와 풀럼의 경기를 직관하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연 중간 관객과 밀당도 이어졌다. 한 관객이 자신과 결혼하자고 하자 “오늘은 안돼”라고 짧게 답하며 씨익 웃는 장면에서 그의 ‘츤데레 아재미’가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역시 음악의 힘이다. 데뷔 30년차 노엘 갤러거가 20세기에 만들었던 오아시스의 명곡들은 21세기 한국 MZ세대들에게 ‘청춘의 송가’로 자리잡았다.

이날 셋리스트는 지난 11월 내한과 대동소이했지만 그는 트럼본 연주와 코러스를 더했고 당시 부르지 않던 오아시스의 ‘왓에버’를 추가했다. ‘왓에버’는 원하는대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젊은이들의 당찬 도전 정신이 담긴 곡이다. 노엘 갤러거 특유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난 곡이기도 하다.

‘왓에버’로 촉발된 관객의 떼창 데시밸은 갈수록 높아졌다. ‘고잉 노웨어’, ‘리틀 바이 리틀’, ‘스탠드 바이 미’, ‘리브 포에버’까지 명곡의 향연이 펼쳐졌다.

마지막 곡을 남기고 그는 “이 곡은 유난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고 소개했다. ‘돈트 룩 백 인 앵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팝송 중 한곡으로 꼽힌다. 1만 8000여 명의 관객들이 입을 모아 ‘돈드 룩 백 인 앵거’를 외쳤다. 노엘은 귀를 쫑긋하며 관객의 떼창을 감상했다. 마지막 곡을 마친 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관객에게 화답했다. 무뚝뚝한 영국아재와 한국 MZ가 하나 된 순간이었다.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