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은별 기자] 1999년 7월 30일. 20살 청년들은 평소 우상으로 꼽던 프로디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인천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을 찾았다. 하필 그날 인천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인근PC방으로 몸을 피한 청년들은 이곳에서 팀명을 ‘넬’로 바꿨다.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은 결국 취소됐다. 망연자실해 있던 찰나 평소 공연하던 홍대 클럽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주말 단독 공연팀이 펑크가 났으니 대체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넬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 첫 공연이었죠. 어떻게 보면 ‘넬’의 첫 생일을 저희가 정한 셈이에요.(웃음)” (김종완)

한국 모던록을 대표하는 밴드 넬이 결성 25주년을 맞았다. 록음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25년간 오롯이 음악이라는 한 우물을 파다보니 어엿한 가요계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숱한 후배들이 이들의 음악을 통해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넬은 여전히 목마르다.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 서고 싶은 무대가 많다. ‘스포츠서울’은 넬의 25주년 생일을 맞아 멤버들의 ‘기억을 걷는 시간’(과거)과 ‘꿈을 꾸는 꿈’(미래)을 엿들었다. 보컬 김종완은 대면으로, 베이시스트 이정훈과 기타 이재경은 서면으로 만났다.

-1999년 7월 31일 ‘넬’이라는 이름을 갖게 돼 벌써 25주년을 맞았습니다. 인생의 절반이상을 넬로 살아온 소감은?

종완: 넬로 팀명을 바꾸고 첫 공연을 한 게 1999년 7월 31일이었어요. 7월 30일 인천에 갔죠.(트라이포트록페스티벌은 당시 7.31~8.1 개최 예정이었다. 하루 전날인 7월 30일 오후 1시부터 행사장 내 캠핑장 입장이 가능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PC방으로 몸을 피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가 아일럿이라는 팀으로 활동했지만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넬로 변경했어요. 페스티벌이 우천취소된 뒤 당시 저희가 공연하던 클럽에서 연락이 왔죠. 주말공연팀이 펑크가 났으니 와줄 수 있냐고요. 저희는 화요일 공연팀이었고 주말은 인기 많은 팀만이 설 수 있었거든요. 당장 홍대로 달려갔죠. 넬로 이름을 바꾼 뒤 첫 공연이라 잊히지 않네요.

정훈: 특별한 2~30대를 보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재경: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멤버들, 그리고 팬들에게 감사드려요. 만약 다중우주가 있다면 가장 행복한 우주에 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MBC ‘송스틸러’ MC전현무가 넬의 “아직도”는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도입부 3음절 중 한곡이라고 치켜세웠죠. 그만큼 많은 이들이 넬을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본인들의 기억 속 넬 활동 시간을 돌이켜본다면?

종완: 인생이랑 비슷해요.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거든요. 20대 때를 떠올리면 분명 많은 일이 있었지만 먼 과거 같지 않아요. 팀 활동도 마찬가지죠. 아마도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음악활동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과거를 잘 돌아보지 않아요. 오히려 앞으로 작업, 공연 준비에 집중하죠. 인생에는 힘든 시기와 좋은 추억이 공존하지만 그 시기를 잘 지냈으니 지금 잘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정훈: ‘기억을 걷는 시간’을 비롯,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부족한 부분들은 채워가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동을 해온 시간인 것 같아요.

재경: 많은 앨범 작업과 공연, 활동을 했지만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아요. 계속 음악에 충실한 밴드로 살아온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여전히 우리의 곡을 각자의 기억 속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실감하고 감동해요. 우리만의 음악이 아니라는 것에 행복과 더불어 책임을 느껴요.

-25년간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장면 3가지가 있다면요?

종완: 회사를 옮길 때, 그리고 (드러머)재원이가 탈퇴했을 때? 마지막은 최근 문제가 불거진 앱 사건이요. 저희가 인디신에 있다 22살에 서태지 컴퍼니에 들어가고 28살에 울림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어요. 이후 36살에 스페이스 보헤미안을 설립한 게 사건이라면 사건이에요. 지금 객원드러머로 활동 중인 피아 양혜승도 서태지 컴퍼니에서 만났고 당시 만났던 매니저 형들, 엔지니어인 고현정 기사님도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죠. 어린 시절 외국에서 살면서 변화를 자주 겪다보니 방어기재가 생겼어요. 웬만한 변화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죠. 그 외에는 재원이가 탈퇴한 정도?

앱은 유난히 기억에 남아요. 가장 최근 사건이기도 하고 25년 동안 음악하며 뉴스에 나온 게 처음이었거든요. 밥 먹고 있는데 뉴스에서 저희를 언급하더라고요. 몇 년 전부터 구상해왔고 본격적인 준비에만 9~10개월이 걸렸어요. 로망이 있었거든요. 콘텐츠도 잘 찍고 싶고, 우리만의 공간에서 소통하고 싶고, 암표상도 잡고 싶었죠. 당연히 팬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며 엄청 들떠있었어요. 대중이 용납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데 저희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거죠.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어요. 물론 오래 준비한 터라 며칠 침울해있긴 했죠. 하지만 이 일을 겪은 뒤 오히려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됐어요. 결국 팬들도 저희가 음악하는 걸 가장 좋아하니 가장 잘하는 걸 하려고요. 소통 플랫폼은 당분간 시간을 두고 생각하려고 해요. 지금으로선 공연 준비와 음악작업을 병행해야 해서 여력이 없어요.

정훈: 2018년 ‘크리스마스 인 넬스룸 콘서트’, 2007년 펜타포트 록페스티벌(보컬 김종완이 만취상태로 무대에 올랐다), 2014년 시크릿 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앱은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앞으로 공연 외에 어떻게 소통할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 해요.

재경: 신인시절 섰던 홍대 클럽들, 그리고 서태지 컴퍼니. 울림엔터테인먼트, 스페이스보헤미안이 기억에 남아요.

-세월이 지나보니 본인들의 커리어 하이와 흑역사는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전성기와 흑역사 중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종완: 지금이 밴드로서 저희의 커리어 하이죠. 공연의 규모, 음악 모두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흑역사는 인디 1집 시절이요. 스튜디오 작업이란 걸 아무 것도 모를 때라 아쉬움이 커요. 풋풋함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작업자 입장에서는 상상했던 좋은 사운드와 달리 ‘우리 실력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구나’라는 아쉬움이 컸거든요. 주위 사람들한테 앨범 나왔다 얘기도 안했어요. 2007년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서 술 취해서 노래한 것도 흑역사라면 흑역사죠. 요즘 아이돌은 안 그러겠지만 그때만 해도 체력이 좋아서 밤새 술 마시고 방송한 적도 있었죠. 다시 돌아간다면 흑역사를 택하려고요. 아름다운 시기는 그 자체로 소중하니 남겨놓아야죠. 그때보다 감도 떨어졌으니까요.(웃음) 과거로 타임머신을 탄다면 앨범의 아쉬운 부분들을 수정하고 오고 싶어요. 안 그래도 2~3달 전부터 과거 발표한 곡 중 바로 잡고 싶은 곡들을 모아 편곡을 새로 하는 작업을 기획 중이에요.

정훈: 커리어 하이는 잘 모르겠지만 밴드로서 흑역사는 20살 무렵이요. 그렇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매일매일 정말 신나고 재밌었던 날들이었어요.

재경: 흑역사라기보다 팬데믹 때문에 세상이 멈춰버린 때가 끔찍했어요. 공연과 음악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던 몇 년의 시간은 흑역사이자 흑백이었죠. 저는 지금이 전성기로 가기 전 단계라고 생각해요. 갈수록 많은 분들이 저희 콘서트를 찾아주시고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해외 공연, 어린 시절 꿈꿔온 위치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거든요. 다만 진짜 전성기는 살짝 미루고 싶네요.

-25년 전 음악을 안했다면 지금쯤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종완: 요리사가 됐을 것 같네요. 음악과 비슷해요. 요리는 개인의 취향도 반영되어야 하고, 플레이팅은 감성적인 반면 재료사용은 과학적이거든요. 음악도 비슷해요. 곡을 쓰는 건 쉽지만 편곡은 수학적이에요. 최근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보는 채널도 요리 채널이에요. ‘알마잔 키친’이라고 자연에서 요리하는 채널이죠. 말을 한마디도 안해요. 그 외 중식채널이나 일본 장인 다큐도 즐겨봐요. 개인적으로 관심많은 채널은 김상욱교수님 채널이요. 양자역학이론을 종종 봐요. 학창시절 이과를 택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다 한국 고등학교로 전학왔을 때 수학을 포기했어요. 자기 전에 과학채널을 틀어놓고 자곤 해요. (웃음)

정훈: 예전에 PC방을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라고 답한 적이 있어요. 평범한 직장에 취직했으면 어땠을까는 상상도 가끔 하곤 해요.

재경:음악 관련 인터뷰어나 팝 칼럼니스트가 됐을 것 같아요. mulgae@sportsseoul.com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