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대한민국 탁구가 ‘히든카드’로 꺼낸 장영진(31·서울특별시청)-박성주(45·토요타코리아)조가 당당히 결승에 올랐다. 패럴림픽 첫 출전에서 최소 은메달을 확보했다. ‘금빛 스매싱’만 남았다. 사고 제대로 쳤다.
장영진-박성주조는 31일 새벽 1시(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수드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탁구 남자복식(MD4) 준결승에서 홈팀 프랑스의 파비엥 라밀로-줄리엥 미쇼드(시드4)조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3-1(11-8 9-11 11-6 11-6)로 승리하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 후 박성주는 “프랑스 팀과 경기를 하다 보니 관중 응원 소리가 걱정은 됐다. 야구장에 온 것 같더라. 파트너 장영진 선수가 ‘그냥 우리 위한 함성이라 생각하고, 우리 것에 집중하면 이길 수 있다’고 해줬다. 덕분에 집중할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승리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장영진 또한 “(박성주)형이 서브 높이 때문에 한번 지적을 받았다. 그때 살짝 멘탈이 흔들릴 수도 있는데 잘 부여잡고 집중해줬다. 덕분에 좋은 결과 나왔다. 파리 패럴림픽이니 프랑스 관중 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집중하니 괜찮았다”며 살짝 웃었다.
두 선수 모두 이번이 패럴림픽 첫 출전이다. ‘꽃미남 에이스’ 장영진은 지난 2023년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때 ‘베테랑 에이스’ 주영대(51)와 호흡을 맞춰 남자복식(MD4)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개인 단식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패럴림픽 무대는 아직 장영진에게는 미지의 공간이다. 장영진은 체대생이던 2013년 교통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이후 사격을 거쳐 탁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꿈이 ‘패럴림픽 금메달 획득’이었다.
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랑꾼’ 박성주 역시 패럴림픽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다. 패럴림픽은 커녕 장애인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본 적이 없다.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다.
국제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2023년부터다. 파리 패럴림픽 출전을 위해 1년간 무려 13개국을 돌며 국제 오픈에서 성적을 내며 이름을 알렸다. 그리스오픈과 요르단오픈, 태국오픈에서 남자단식 1위를 차지했고, 일본오픈과 요르단오픈에서는 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만난 장영진-박성주는 ‘비장의 카드’였다. 원래 장영진의 파트너였던 주영대가 파리에서는 단식에 주력하기 위해 복식조에서 빠지면서 박성주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이들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4강전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독특한 ‘백핸드 롱핌블러버’를 사용하는 박성주의 변칙 공격에 장영진의 빠르고 강력한 정공이 곁들여지며 특별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1세트를 가볍게 따낸 장영진-박성주는 2세트 넉넉히 앞서다 추격을 허용하며 9-11로 졌다. 3세트부터 다시 경기 주도권을 되찾았다. 6-5에서 연속 3점을 내며 9-5를 만들었고, 박성주의 강한 스핀을 넣은 서브에 이어 장영진의 강력한 백핸드 스매시가 터지며 3세트를 잡았다.
4세트에서는 초반 한껏 기세를 올리며 7-1로 앞섰다.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프랑스의 추격에 잠시 주춤하기는 했다. 9-6으로 쫓기자 작전시간을 불러 흐름을 끊었다. 이후 내리 2점을 따내 경기를 끝냈다.
박성주는 “2세트가 좀 아쉽다.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다가 뒤집혔다. 서로 얘기하면서 끝까지 해보려 했는데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아쉽다. 내일 결승이다. 반복되지 않도록 잘 준비하겠다. 오늘 경기 잘 복기하면서 보완점을 찾고 더 좋은 모습 보이겠다”고 설명했다.
장영진은 “확실히 패럴림픽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새삼 느꼈다. 좋은 경험이 됐다. 결승에서는 넉넉히 이기고 있어도 방심하지 않겠다. 오늘 경기가 약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꼭 금메달 따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장영진-박성주 조의 결승 상대는 앞서 한국의 차수용(44·대구광역시청)-박진철(42·광주광역시청)조를 준결승에서 풀세트 끝에 물리친 슬로바키아의 피터 로바스-얀 리아포스조다. 결승전은 1일 자정에 시작된다.
한편 장영진-박성주조와 동반 4강진출에 성공하며 ‘한국팀 결승대결’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던 차수용-박진철조는 슬로바키아에 2-3으로 패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패럴림픽 탁구는 3,4위전을 따로 치르지 않아 결승행이 좌절된 프랑스와 한국에게 동메달이 모두 수여된다.
경기 후 “박성주-장영진 선수가 꼭 결승에 진출해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래도 동료를 응원했다. 그대로 됐다. 박성주는 “같이 올라가지 못해 아쉽다. 개인전이 이어진다. 응원하겠다”고 화답했다. raini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