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일단 피부가 곱다. 허여멀겋다. 쌍꺼풀도 없다. 웃는 건 맑다. 누가 봐도 선할 것 같은 인상이다. 경찰 제복을 입고 있다. 음습한 시골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막을 것만 같다.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하던 중 외지에서 온 형사(전석호 분)와 대치하게 됐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형사는 불쾌하다면서 경찰 배지를 들이밀었다. 반말을 뱉었고 무례했다. 제복을 입은 경찰은 거리낌 없이 칼을 꺼내더니 사정없이 찔렀다. 눈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실험적인 면이 다분한 영화 ‘더 킬러스’의 세 번째 단편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에서 순경 역을 맡은 김민의 등장 장면이다. 약 30분 분량의 영화에서 10분 정도 지났을 때 처음 얼굴을 비춘다. 순경이 등장하면서부터 갈등의 진폭이 커진다.

등장만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확실한 한 방을 들고나왔다.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에겐 어려웠을 임무인데, 김민은 매우 훌륭히 해냈다. 작품이 끝나고 뇌리에 강하게 남는 인상이었다.

김민은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인터뷰에서 “장항준 감독님이 제게 자유를 많이 줬다. 제가 가진 선한 인상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저에겐 큰 롤이라서 책임감을 갖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염상구를 잡으러 한 술집을 찾은 형사와 킬러가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누가 살인마냐”며 서로 의심하고 칼을 겨누는 상황이 생긴다. 단순한 구조지만 김민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전사가 없는 순경이 왜 형사를 죽이고 살인마를 쫓는지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염상구가 워낙 유명한 살인마이기 때문에 훈련된 킬러에겐 붙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했어요. 처음에 무해한 사람처럼 등장했다가,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선한 이미지의 제 모습에서 의외성을 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론 연기를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주위에서 칭찬을 워낙 많이 해주셔서 안도하고 있어요.”

재밌는 건 호흡이다. 비교적 연배가 높은 장현성, 이준혁, 박상면이 호흡을 길게 끌고 가는 대신 김민은 한 템포 빨리 움직이고 말한다. 노래로 치면 전주가 없는 느낌이다. 주위와 다른 속도감에서 엇박자 덕에 스릴러 장르의 맛이 더 살아났다.

“전주 없는 연기라니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런 연기를 추구해요. 대사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고요. 호흡도 오래 가져가지 않죠. 조금은 빨라야 더 흥이 나고 재밌는 법이잖아요. 일상에서도 말을 빨리하잖아요. 최대한 현실감을 가져가고 싶었어요.”

예능계에서도 사랑받는 장항준 감독과 김민은 인연이 깊다. ‘리바운드’에서 식스맨 허재윤으로 인연을 맺었고 ‘모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에서도 캐스팅됐다. 사극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선 유해진 아들로 뽑혔다.

“운이 좋아요. ‘왕과 사는 남자’에선 유해진 선배님과 닮은 점이 있어서 캐스팅된 것 같기도 해요. 하하. 장 감독님은 어떻게 찍을지 확고하세요.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받아주시고요. 늘 행복하고 유쾌하십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도 있으시고요. 장현성 선배와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모습은 본보기가 됐어요. 덕분에 큰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보답했으면 하네요.” intellybeast@sportssoe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