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함께 있고, 늘 누군가의 뒤에서 지지해 주고 우직하게 함께 나아가는 사람일수록 외로운 경우가 더러 있거든요.”

독립군 우덕순(박정민 분)은 영화 ‘하얼빈’에서 어둠 속 한 줄기 빛이 되는 인물이다. 독립이라는 거대 명제 앞에 잠식된 안중근과 다른 동지들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농담으로 이 나라가 망했으면 싶었지만, 진짜 나라가 망할 줄 알았소”라며 실없는 농을 건네는 식이다.

박정민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안중근은 부인에게, 김상현은 어머니에게 유서와 같은 편지를 쓴다. 가족이 없는 우덕순은 안중근과 김상현에게 쓴다. 마지막 순간, 편지를 남길 사람이 자신들의 동지라는 게 제 기준에서는 많이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인물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우덕순을 제안한 우민호 감독의 이야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우 감독님을 뵈러 갔을 때, 이 영화는 안중근 장군을 앞세우고 있지만 독립군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그래 맞아, 이들도 영웅이지만 두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죠.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죠. 그 점이 끌렸어요. 잘한 거 같아요.”

‘하얼빈’ 현장은 배우들이 펼친 연기에 우 감독이 화답하는 식이었다. 박정민은 우 감독에 대해 “배우가 본인의 방향과 일치하는 연기를 보여줬을 때 그 누구보다 크게 환호해 주던 분이었다”며 “내가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런 부분에서 너무 감사했다”고 전했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다. 혹한과도 싸워야 했다. 육체적으로 지칠 수 있는 날들이 많았다. 박정민은 “돌아보면 딱히 힘들었던 게 기억이 안 날 정도다. 그건 이 현장을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라며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매일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독립군 김상현 역을 맡은 조우진과의 호흡 역시 돋보였다. 사이가 좋을 땐 앙상블이, 서로를 향한 의심으로 날이 섰을 땐 긴장감이 화면에 가득했다.

“조우진 형님과 연기를 하면서 이 사람의 과거가 궁금해질 정도였어요. 어떻게 일을 시작하셨는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질문했던 기억이 있어요. 영화에 모든 걸 다 걸고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기는 무엇인가, 하는 많은 질문을 저에게 던져주셨어요.”

박정민의 시계는 쉴틈없이 돌아갔다. 지난해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 ‘전,란’을 비롯해 영화 ‘1승’ ‘하얼빈’으로 빡빡한 한 해를 보냈다. 올해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언했지만, 차기작 ‘휴민트’ 촬영을 위해 라트비아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공교롭게도 ‘하얼빈’과 같은 촬영지다.

박정민은 “‘휴민트’가 끝나면 이번엔 진짜 쉴 것”이라고 웃어 보이며 “배우로서 바람은 조금만 더 일을 재밌어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 일에 흥미를 지금처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최대한 길게 이 일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게 제 목표”라고 말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