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8시께 아메리칸항공 산하 PSA 항공의 여객기가 워싱턴DC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착륙하려고 접근했다. 그런데 주변 상공에서 비행 훈련 중이던 미국 육군의 블랙호크 헬기가 여객기와 충돌했고, 두 항공기는 근처 포토맥강에 추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 기자회견에서 “슬프게도 생존자는 없다”고 말했다. 이 여객기에는 67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여객기엔 피겨 감독,코치,선수,선수가족 등 14명도 타고 있었는데, 한국계 10대 피겨 샛별 2명 스펜서 레인(16)과 지나 한(13)도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이들은 캔자스주 위치토에서 열린 유망주 훈련 캠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두 명 모두 각각 어머니와 함께 타고 있었다.

레인과 지나한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 노우드의 ‘보스턴스케이팅클럽’에 속한 선수들이며, 이 여객기에는 이들의 스승인 1994년 세계 피겨선수권대회 페어 부문 우승자 예브게니야 시시코바와 바딤 나우모프 부부도 탑승하고 있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어린시절 입양된 레인은 지난해 11월 ‘2025 US 이스턴섹셔널스’에서 남자 싱글 부문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보인 인재였다. US 이스턴섹셔널스는 동부 지역 피겨 유망주가 겨루는 대회다.

촉망받는 선수였던 레인은 자신의 뿌리가 한국임을 강조하며 SNS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배치하기도 했다.

지나한도 14세 미만 ‘노비스 그룹’의 유망주였다. ‘2025 US 이스턴섹셔널스’의 여자 싱글 부문 4위를 기록하는 등 빼어난 재능을 보였다.

지나한은 3년전 한 인터뷰에서 “2032년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서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금메달을 따고 싶다”라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끝내 그 꿈을 펼치지 못하게 됐다.

피겨동료들도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지미 마는 방송 인터뷰에서 “지나는 13살인데, 나는 그 나이에 아무것도 못했다. 지나는 항상 나보다 10배는 더 잘했다. 나이가 어린데도 선수권대회 수준의 스케이팅을 선보였다”고 기억했다.

미샤 미트로파노프는 “지나는 예쁜 미소를 가졌다. 이름을 부를때마다 항상 웃어주곤 했다. 항상 밝은 목소리로 반겼다. 스펜서는 폭죽 같았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사랑은 놀라웠다. 모든 비디오와 경기, 그게 뭐든 전부 찾아서 보곤 했다. 늦게 운동을 시작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는 지난달 30일 “ISU와 전 세계 스케이팅 커뮤니티는 워싱턴DC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 코치가 탑승한 걸로 파악돼 가슴이 아프다. 이번 비극에 연관된 모든 이들과 함께 애도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 피겨계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매우 힘겨운 시기에 유가족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도 성명서를 통해 “피겨계는 비탄에 잠겼다. 끔찍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의 가족과 친구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슬프다”고 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01년 11월 12일 뉴욕에서 발생한 아메리칸항공 587편 추락 사고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다. 아메리칸항공 587편 사고 당시엔 승객과 승무원 260명 전원이 사망했고 지상에 있던 주민 5명도 목숨을 잃었다.

지난 1961년 미국 피겨대표팀 항공참사도 떠오른다. 당시 프라하 세계 피겨 선수권에 참가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 착륙하려던 여객기가 추락해, 미국 대표팀을 포함한 탑승자 72명 전원과 지상에 있던 1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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