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제55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에서 4선에 성공한 정몽규(63) 회장은 당시 유효 득표 183표 중 156표를 쓸어 담았다. 85.7%의 압도적 지지다.

정 회장의 득표율보다 더 눈길을 끈 건 투표율이다. 선거인단은 192명인데 무려 95%가 투표에 참여했다. 현장 투표로 시행하는 종목 단체장 선거는 60~70% 투표율만 나와도 높다는 시각이 짙다. 지난 1월 축구협회장 선거 이상으로 관심이 뜨거웠던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투표율도 53.8%(2244명 중 1209명)였다. 일부 지방 선거인단이 투표 시간에 맞춰 참여하는 것 등의 한계가 따르는 게 현장 투표 방식이다.

전례 없는 투표율이 나온 건 그만큼 한국 축구 미래를 두고 축구계 직능별로 엄청난 관심을 품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 회장으로서는 이런 가운데 사실상 몰표를 받아 당선된 만큼 새 임기에 정책 추진력을 얻게 됐다.

이를 두고 정 회장의 눈치를 보거나, 생계에 위협을 느낀 선거인단이 표를 몰아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선거인단에서 동호인만 20명에 달한다. K3, K4 및 WK리그 지도자와 선수(19명) U-18 및 대학선수(5명), U-18 및 대학감독(12명) 1~4급 심판(8명) 등 아마추어 무대 종사자만 절반에 가깝다. 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정 회장에게 표를 줬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궤변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소중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선거인단을 깎아내린 것과 다름이 없다.

정 회장은 지난 세 차례 임기에서 공과가 뚜렷하다. 세 번째 임기 땐 각종 행정 난맥으로 지탄받았다. 그럼에도 다수 축구인이 이번에 그를 지지한 건 상대 후보가 더 낫지 않다고 여긴 게 ‘팩트’에 가깝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을 시작으로 다른 종목 단체장 선거엔 젊은 피 바람이 불었다. 이미 검증받은 행정력과 더불어 참신한 개혁안이 돋보였다. 축구협회장 선거에서는 그런 바람이 불지 않았다. 앞서 축구협회 행정을 비난한 일부 젊은 축구인은 훈수꾼 노릇만 할 뿐 총대를 메고 수장직에 도전하려는 이가 없었다. 이들이 비겁했을 뿐, 선거인단은 잘못한 게 없다. 투표에 참여한 한 심판은 “선동꾼이 판치는 축구계 같다. 어느 순간 생계에 위협을 느껴 투표한 사람처럼 돼 있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 회장은 새 집행부 구성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투표율과 득표율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마추어계에도 몰표를 받은 만큼 그에 걸맞은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정 회장은 지난 선거 운동 기간 진정성 있는 현장 행보로 표심을 얻었다. 현장 목소리를 정책에 더 반영하겠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현장을 잘 아는 ‘축구인 전무이사’ 체제 부활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임기 기간 정 회장은 전무이사직을 없애고 상근부회장 체제로 바꿨다. 그러나 전문성 부족은 물론 17개 시도협회 등과 소통 부족으로 비판받았다. 축구협회 직원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과거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이 전무이사를 맡을 때만 해도 적극적으로 시도협회 등 각계 축구인과 스킨십했다. 민원 처리 속도가 빨랐다. 협회 조직원도 홍 전무이사를 잘 따르며 능동적으로 업무했다.

전무이사는 행정 뿐 아니라 축구계를 하나로 묶는 가교 구실을 한다. 어느 때보다 두 동강 나 있는 현재 축구계에 꼭 필요한 자리다. 물론 일을 잘 수행할 적임자를 뽑는 게 선결 과제다. 이는 정 회장의 공약 중 하나인 차세대 축구인 행정가 육성과 궤를 같이한다. 그가 높은 득표율 속 한국 축구의 ‘원 팀’을 다시 이끌 체제와 인재를 끌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