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하이퍼나이프’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생명을 살려야 할 의사가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죄의식도 없다.
죽음이란 공포 앞에 교수 덕희(설경구 분)는 자신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려 제자 세옥(박은빈 분)의 수술대에 오르려 한다. 세옥에겐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것만큼 더 큰 형벌이자 가르침은 없기 때문이다.
설경구는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디즈니+ ‘하이퍼나이프’ 종영 인터뷰에서 “보편적 감정으로 접근하면 둘 다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며 “과잉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했다. 실패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 극단으로 가는 이상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정통 메디컬 드라마에서 빗겨난 작품이다. 배우들이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게 관건. 작품을 숙고하던 차, 박은빈의 캐스팅 소식에 설경구는 흔쾌히 결정을 내렸다. 앙숙처럼 서로를 밀어내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서로의 안위를 챙기며 ‘사랑’으로 나아가는 케미가 빛을 발한 건 두 배우의 빛나는 연기 덕분이다. ‘피폐 멜로’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것도 이런 이유다.

“제가 박은빈에게 많이 의지했죠. 듬직함이 있어요. 선한 역할만 하다가 이번 역할에 욕심이 더 많이 생겼을 거고, 준비도 많이 해왔어요. 저한테는 매번 밥 먹었냐고 물어봐 주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작품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다. 덕희가 세옥의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것 이외 정보는 생략했다.
온라인상에선 결말을 놓고 갖은 분석이 나왔다. 설경구는 “죽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세옥의 실패가 그를 더 큰 성장으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런 애틋한 작품 속 감정과 달리 설경구는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박병은이 영화 ‘박하사탕’(1999)에서 설경구가 맡은 영호의 독백으로 오디션을 본 것을 두고도 손사래를 쳤다.
“연기에는 선후배가 없어요. 특히 가르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로서 개인이 갖고 있는 독창성이 있기 때문에 제가 선배라고 함부로 얘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의 연기 인생이 그랬다. 다작하면서 독보적 연기 세계를 구축했다. 영화 ‘꽃잎’(1996)으로 데뷔해 올해까지 50편의 영화, 6편의 드라마 시리즈에 출연했다. “늘 정확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곳”이라며 누구보다 촬영 현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설경구는 “현장이 제일 재밌다. 살아있는 걸 느낀다”며 “감독과 심리전을 하면서 생각으로 치고받는 게 흥미롭다.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쓴다. 그러다 보니 촬영 안 할 때는 할 게 없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향후 작품 방향성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도 슬쩍 내비쳤다. 이번 작품에서 맡은 의사를 비롯해 변호사(‘보통의 가족’), 총리(‘돌풍’) 등 묵직한 열할에서 내려올 생각이다.
“물릴 때가 됐으면 바꿔야겠죠. 턴을 할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런데 대본이 와야 하는 거니까 일단 기다려볼게요(웃음).”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