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김장하와 문형배.

한 사람은 “아픈 사람에게서 번 돈은 사회에 되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며 평생을 나눔에 헌신했고, 또 한 사람은 “나는 평균인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법의 상식을 지켜냈다.

가난한 부자와 평범하고자 한 법관, 직업은 달랐지만 두 사람의 철학은 한 뿌리에서 뻗은 가지처럼 닮았다. 마치 정신으로 계승되는듯 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공통된 인생철학은, 야구장 응원석에서 만큼은 냉정하게 나뉜다. 김장하 선생은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NC 다이노스를 응원한다.

반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롯데가 못할 때 더 응원하고 싶다”고 말한 ‘찐’ 롯데 팬이다.

◇돈은 거름처럼, 갚는다면 이 사회에

김장하 선생의 인생은 평생 걷는 사람이었다. 자가용은 없었고, 한약방 옆 자전거 가게 주인에게는 30년간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았다.

진주에서 약값은 낮췄고 직원 월급은 올렸으며, 아픈 사람에게서 번 돈을 다시 아픈 사람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썼다. 명신고를 세워 기부했고, 이름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만나주지 않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찾아왔지만 말없이 차 한 잔만 조용히 건네는게 다였다. 그런 김장하 선생에게도 야구는 양보할 수 없는 대상이다.

“난 최동원이 좋았어. 스트라이크, 또 스트라이크. 그런 배포.”

그렇게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했지만, 지금은 NC 다이노스 팬이 됐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고지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김 선생은 경남 사천 출생이다.

김 선생이 NC팬이라는게 알려지자 2023년 NC구단은, 그에게 이름(김장하)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했다. 등번호는 ‘0’이었고 유니폼의 빈 곳은 선수들의 사인으로 가득 채웠다. 개막전 시구 제안도 했지만, 김장하 선생은 늘 그랬듯 나서지 않고 고사했다.

문형배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아고를 다녔다. 김장하 선생은 문형배가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형배가 찾아와 은혜를 말하자, 김장하 선생은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네게 준 것이니, 갚고 싶다면 이 사회에 갚아라”고 했다. 그 말은 문형배를 울렸고 그대로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

문형배는 헌법재판관 청문회에서 일반인의 평균 재산보다 조금 더 많은 가진 것에 대해 “반성한다”고 말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결혼할 때 다짐했다”는 그의 말은, 김장하 선생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철학이 닮았다고 해서 응원팀까지 같을 순 없나 보다.

문형배 권한대행은 2012년 9월 SNS에 “롯데 자이언츠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안타까운 마음에 내일 사직구장에 가서 응원할 생각이에요. 잘할때 응원하는 거 누군들 못하겠어요. 못할때 응원하는 사람이 진정한 팬이죠”라고 올렸고 2020년엔 “롯데 자이언츠 4연승 놀랍다”라고 썼다.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풍경에서, 두 사람이 야구팬으로 각자 응원하는 팀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야구장에 앉아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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