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서 명대사는 단순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요소를 넘어선다. 캐릭터의 감정을 함축하고 드라마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드라마 ‘상속자들’(2013)에는 아직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대사가 있다. “나 너 좋아하냐?”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김탄(이민호 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동시에 김은숙 월드의 ‘오글거림의 미학’을 상징하는 대사로 남았다. 이번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2025)에서도 그 계보를 잇는 새로운 명대사가 탄생했다.
◇ “너 보고 있으니까 너 너무 보고싶어”

“보고 있는데 보고 싶다.” 이 문장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눈앞에 있는 대상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대사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은 ‘상속자들’의 “나 너 좋아하냐?”를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는 김은숙 작가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언어적 함정’에 가깝다. 논리를 파괴하는 역설적인 문장을 통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찾아가게 만든다.
이 대사의 진정한 마법은 ‘시간 여행’이라는 극적 상황과 만났을 때 발현된다. 과거로 가게 된 지니(김우빈 분)는 아직 자신과 사랑에 빠지기 전의 가영(수지 분)을 마주하고 있다. 그의 눈앞에 있는 ‘너’는 사랑의 감정과 추억이 쌓이지 않은, 그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과거의 가영’이다. 하지만 그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너’는, 함께 웃고 울며 관계를 쌓아온 ‘현재의 가영’인 것이다.
결국 이 대사는 “같은 모습을 한 당신을 보고 있으니, 나와 역사를 함께한 진짜 당신이 미치도록 그립다”는, 시공간을 초월한 애틋함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존재를 완성시켜준 ‘단 한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고백이다. 물리적 존재를 넘어 관계성과 추억이 완성시킨 인격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지극히 철학적인 대사인 셈이다.
◇ “그녀는 분명 의로운 소원을 빌거야”

이 대사의 무게는 화자인 ‘지니’의 서사에서 비롯된다. 수천 년간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을 목격하며 냉소주의에 빠져있던 그가 가영을 향해 보내는 절대적인 믿음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은 어차피 자신을 위해 소원을 빈다’는 오랜 불신을 스스로 깨부수는 지니의 내적 성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사 속 ‘의로운 소원’은 나를 넘어 타인의 안녕과 구원을 향한다. 지니는 가영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더 큰 가치를 위한 소원을 빌 것이라 확신한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이상 소원을 매개로 한 ‘거래’가 아님을 증명한다.
결국 이 한 줄의 대사는 소원을 들어주는 자와 비는 자라는 수직적 계약 관계가 서로의 선함을 믿고 구원하는 수평적 사랑의 관계로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다 이루어질지니’의 진짜 마법은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의 선한 본질을 의심 없이 믿게 되는 기적임을 이 명대사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