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1914년 10월 10일, 경성의 심장부(현재의 소공동)에 4층짜리 벽돌 건물이 문을 열었다. 독일에서 수입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객실에는 프랑스산 가구가 채워졌으며,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 운영됐다. ‘조선호텔(Chosen Hotel)’의 등장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손탁호텔(1902년)이나 대불호텔(1888년)이 존재했지만, 조선호텔은 한반도 최초의 ‘본격적인 럭셔리 호텔’이자 ‘국가적 상징’으로 설계된 공간이었다.

​시작은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이 운영하는 ‘철도 호텔’이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진 경부선과 경의선을 이용하는 서양과 일본의 VIP들을 위한 국책 호텔이었다. 건축 설계부터 독일 회사(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맡았고, 총지배인은 일본 제국호텔 출신이 맡는 등, 당대 최고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집약시켰다. 위치 또한 절묘했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환구단(圜丘壇)’을 정원처럼 품고 그 맞은편에 세워졌다.

​이 압도적인 공간은 곧 역사의 무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통치를 위한 정·재계 인사들의 사교장이자 거점이었으나, 1945년 해방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미군정이 진주하며 호텔을 사령부로 사용했고, 그해 10월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205호실에 머물며 첫 내각을 구상하고 건국 활동을 펼쳤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을 점령한 북한 인민군의 사령부로 사용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서울 수복과 함께 다시 미 8군 사령부로 쓰이는 등, 조선호텔은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권력의 이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상징적 공간으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 호텔은 민영화의 길을 걷는다. 1967년 삼성그룹(이후 신세계그룹으로 분리)이 호텔을 인수했고, 1969년 낡은 구관을 해체하고 1970년 20층 규모의 현재 건물을 완공했다. 미국 아메리칸항공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웨스틴 조선호텔’로 재탄생하며, 70~80년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비즈니스 1번지’로 자리매김했다.

​110년이 흐른 지금, 조선호텔은 ‘웨스틴 조선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환구단의 9번째 문(門)에서 이름을 딴 레스토랑 ‘나인스 게이트(Ninth Gate)’는 호텔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14년 제국의 철도 호텔로 시작해, 해방의 기쁨과 전쟁의 상흔을 안고, 경제 발전의 심장부 역할을 해낸 곳. 조선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환구단과 함께 대한민국의 110년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살아있는 아카이브(Archive)’ 그 자체다. socool@sportssebool.com

[스포츠서울 연재기획: 원성윤의 호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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