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명세빈은 데뷔 30년차 배우다. 타인이 따라올 수 없는 청초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시작했다. 워낙 예쁘고 맑은 느낌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오랫동안 첫사랑 이미지를 간직했다.
30년 만에 전업주부가 됐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이야기’) 속 김 부장(류승룡 분)의 아내 박하진을 통해서다. 남편의 비호 아래 가정에만 충실하던 박하진은 임원 승진을 앞두고 김 부장의 입지가 흔들리면서 점차 내공을 발휘한다. 자존심 때문에 직장을 버텨내던 김낙수에게 여유를 불어넣어준다.
명세빈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감독님께서 지혜로우면서도 소시민적인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사실 아파트가 구축이고, 알뜰살뜰 모아서 마련한 집, 대출금도 남아있는 집의 평범한 주부라는 설정이다. 오래된 부부의 지혜로운 대화법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넓은 마음의 박하진과 마주한다. ‘김 부장 이야기’의 진짜 위로는 뚝심 있게 김 부장의 노고를 알아주고 위기를 함께 버텨주는 박하진에게 받는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쁜 짓도 서슴지 않던 김 부장이 후반부 소나기가 내리자 여유있게 낮잠을 청할 수 있었던 건, 박하진의 아량이 있어서 가능했다.
“황토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김낙수에게 ‘왜 이렇게 짠하냐’고 하잖아요. 풍파를 겪고 실패를 한 뒤에도 남편을 짠하게 바라보고요.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이 여러 모습으로 변했는데, 박하진과 김낙수는 이런 얼굴로 변한 거죠.”
연기력으로 조명받기 보단 미모로 관심받은 배우였다. 연기를 못했던 건 아니지만, 엄청난 폭발력까지는 아니었는데, ‘김 부장 이야기’에서 명세빈은 차원이 다르다. 감정신은 물론 지나가는 장면에서조차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흔들리는 눈빛, 어색한 미소, 앙다문 입에서 나오는 불편한 심기 등 작은 포인트에서도 시청자를 확 끌어당긴다.

“감독님이 잘 잡아주실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닥터 차정숙’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기도 했어요. 연륜도 있었던 것 같고요. 노력하니까 연기도 되는구나 싶었거든요. 이번에도 잘하고 싶었고, 집중을 많이 했죠.”
특히 7회 엔딩, 김낙수가 퇴사 후 집에 찾아와 고개를 떨군 채 밥 달라고 요청할 때 장난을 친 뒤 팔을 벌리며 안아주는 장면은 뜨거운 감동을 일으킨다. ‘김 부장 이야기’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 장면 끝나고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제 친구들이 딱 박하진이 처한 상황이거든요. 하진이 낙수를 그렇게 안아주는 것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꼭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분들도요.”
워낙 넓은 마음을 가진 박하진을 연기하면서 명세빈도 성장했다. 인물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많은 사람이 박하진에게 감동받지 못했을 수 있다. 명세빈에게도 박하진의 아량이 있는 것 아닐까.

“모르겠어요. 부끄럽습니다. 많이 배웠어요 하진이한테. 인생과 사랑에 대해서요. 하진이는 웃음을 잃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든든히 버텨주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