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때론 사랑의 완성이 ‘함께’가 아닐 수도 있다. 지난 시간을 되짚었을 때 마음에 남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해피엔딩일지 모른다. 영화 ‘만약에 우리’는 헤어짐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가장 성숙한 이별의 얼굴을 그린다.
‘만약에 우리’는 20대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은호(구교환 분)와 정원(문가영 분)이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며 기억의 흔적을 펼쳐보는 현실 공감 로맨스다. 지난 2018년 개봉한 중국 영화 ‘먼훗날 우리’를 원작으로 하며, 오는 31일 개봉한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끝내 도달하지 못한 관계의 가정법을 꺼내 든다. 뜨겁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 10년 만에 다시 마주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2008년의 과거와 2024년의 현재를 오가는 구조로 전개된다. 시간의 간극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같은 사랑이 어떻게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2008년의 은호와 정원은 풋풋하고 서툴다. 사랑은 뜨겁지만 말은 부족하고, 진심은 넘치지만 방법을 모른다. 때론 감정이 넘쳐나고, 사소한 오해에도 쉽게 균열이 생긴다. 영화는 이 시절을 미화하지도, 지나치게 비극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빛났고, 그래서 더 아팠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담담히 기록한다.
반면 2024년의 두 사람은 이미 많은 시간을 통과해왔다. 감정은 정제됐고, 말은 신중해졌으며, 무엇보다 ‘붙잡지 않는 법’을 배운 상태다. 지난 시간을 덤덤히 돌아보는 이들은 더 이상 서로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성숙한 방식으로 ‘안녕’을 건넨다.

은호 역의 구교환은 ‘연기’라는 경계를 지우고 스크린 속에 존재한다. 말끝을 흐리는 습관, 시선을 피하는 타이밍, 아무 일 아닌 척 넘기려다 실패하는 은호의 모든 순간은 연기된 인물이 아니라 실제 어딘가에 살아 있을 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특히 치기 어린 과거의 은호와 한 가정의 가장이 된 현재의 은호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든다.
정원 역의 문가영 역시 시기에 따라 인물의 온도차를 정확히 짚어낸다. 미성숙한 시기의 정원은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반짝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반면 성인이 된 정원은 감정을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웃음의 깊이도, 침묵의 무게도 달라졌다. 문가영은 두 시기를 각기 다른 결로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 흐르는 동일한 감정의 뿌리를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만약에 우리’는 가장 기본에 충실한 로맨스 영화다. 거창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대신 사랑이 시작되고, 어긋나고, 끝난 뒤 남는 감정의 잔향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은호와 정원의 이야기이면서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스크린 속 두 사람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기억과 맞닿는다.
이 이야기엔 완벽한 재회도, 재결합도 없다. 대신 완벽한 이별이 있다. 서로를 사랑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태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때론 사랑은 실패로 남을 수 있지만, 그 실패가 관계를 망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약에 우리’는 그 가능성을 담백하게 증명하며, 우리 모두의 지나간 연애를 떠올리게 만드는 현실 공감 로맨스로 남는다. sjay09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