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이야기 도착 장소가 달라졌다. 한때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완성되던 서사는 이제 안방으로 향한다.

변화는 배우들의 선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흥행을 이끌던 스타들이 잇따라 TV 드라마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는 일시적 복귀나 이미지 환기가 아니다. 플랫폼의 경계가 허물어진 환경 속에서, 장편 서사와 캐릭터의 축적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어디에 있는지를 계산한 결과다.

그 중심에 하정우가 있다. 배우로서의 다음 행보를 안방극장으로 택했다. tvN 새 토일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빚에 쫓기는 생계형 건물주가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 선택의 경계에 서는 서스펜스물이다. 하정우는 ‘영끌’ 대출로 건물을 산 뒤 파산 위기에 내몰린 가장 기수종을 연기한다. 재개발이라는 허상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버티던 인물이, 가짜 납치극이라는 위험한 선택에 발을 들이면서 서사는 급격히 어두워진다.

이 작품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하정우의 복귀 시점에 있다. 그는 2007년 MBC 히트 이후 19년 만에 정규 드라마에 출연한다. 영화에서 쌓아온 이미지와 연기 밀도를, 장편 서사 구조 속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리는 선택이다. 극한 상황으로 갈수록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쪼개는 하정우 특유의 연기가 서스펜스를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 흐름에는 이나영도 있다. 그는 ENA 월화드라마 ‘아너 : 그녀들의 법정’으로 약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세 명의 여성 변호사가 거대한 스캔들의 진실을 추적하는 법정물에서, 이나영은 셀럽 변호사 윤라영을 연기한다. 말의 무게와 이미지가 곧 권력이 되는 인물을 통해, 기존의 차분하고 절제된 톤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변주를 시도했다. 성적 역시 즉각 반응했다. 첫 회부터 ENA 역대 최고 수준의 첫 방송 시청률을 기록하며, 배우의 복귀가 곧 화제성과 시청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정점은 전지현의 합류다. 그는 2021년 tvN 지리산 이후 약 4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다. JTBC 하반기 기대작 ‘인간X구미호’에서 2000년을 살아온 구미호이자 톱배우 구자홍을 맡는다. 판타지 설정 위에 스타의 자의식과 인간적 결핍을 겹쳐 놓은 캐릭터다. 과거 ‘별에서 온 그대’, ‘푸른 바다의 전설’을 통해 판타지 로맨스의 흥행 공식을 완성했던 전지현이 다시 한 번 장르의 중심으로 돌아온 셈이다.

우연히 겹친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등 글로벌 플랫폼이 주도하는 제작 환경은 드라마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수백억 원대 제작비, 영화급 스태프, 사전 제작 시스템은 드라마를 더 이상 영화의 하위 포맷으로 보지 않게 만든다.

과거처럼 쪽대본과 밤샘 촬영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기획 단계부터 완결된 대본과 충분한 제작 기간을 확보하는 방식이 보편화됐다.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 밀도를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장편 서사가 오히려 더 매력적인 무대가 된 셈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과거에는 영화와 드라마가 시장과 소비 방식에서 명확히 구분됐다. 지금은 플랫폼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졌다. 배우들의 이동은 개인 선택이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크린에서 안방으로의 이동은 격하가 아니다. 서사의 확장이고, 관객과의 접점이 바뀐 결과다. 하정우, 이나영, 전지현의 선택은 이 변화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이미 굳어진 흐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