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이동윤 기자]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쓴 알리사 리우와 중국 대표 프리스타일 스키 스타 에일린 구(중국명 구아이링)가 주목받고 있다. 현지 언론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투영된 ‘뜻밖의 라이벌’로 둘을 비교하고 있다.
리우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열린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인생 연기를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 여자 피겨가 24년 만에 올림픽 정상에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선두권에 근접했던 그는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악셀을 포함한 고난도 점프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리우는 미국 오클랜드 출생이며 아버지가 중국인이다. 그는 2022년 베이징 대회 이후 번아웃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2년여 만에 복귀했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던 선수가 좌절을 딛고 부활한 그를 두고 현지 언론은 “자신을 내려놓은 뒤 오히려 가장 큰 무대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금메달이 단순한 우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리우의 아버지가 중국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을 떠난 반체제 인사라는 점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딸이 중국 정보기관의 표적이 됐다고 느낀 적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내 일부 보수 진영에서 이같은 배경을 부각하면서 리우를 ‘자유의 상징’처럼 소비하고 있다.

반면 구아이링은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제기됐던 국적 선택에 대한 비판이 이번 밀라노 올림픽에서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구아이링은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어머니가 중국인이다.
구아이링은 22일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4.75점을 기록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2022년 베이징 대회 때 빅에어와 하프파이프 금메달을 따냈던 그는 이번 대회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추가하면서 통산 3번째 금메달로 프리스타일 스키 남녀 통틀어 최다 금메달 기록을 세웠다. 지난 대회 성적까지 더하면 금 3개, 은 3개 프리스타일 사상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팬들은 미국의 시스템에서 성장한 그가 중국을 위해 뛰는 것을 배신이라고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테네시주 공화당 소속 앤디 오글스 하원의원은 구의 사진을 게시하며 “미국을 배신하고 우리의 적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JD 밴스 부통령도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을 응원할 것”이라며 사실상 구를 겨냥한 발언을 내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보도에서 구와 피겨스케이팅 선수 베벌리 주가 중국을 위해 출전하는 대가로 지난 3년간 1400만달러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구아이링은 “미국 정치의 특정 부류에 샌드백이 된 느낌이다”며, “정말 많은 선수가 다른 나라를 위해 출전하는데 사람들은 유독 나에게만 문제를 제기한다”고 응수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소셜미디어에는 ‘알리사 리우처럼 되라’는 문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두 선수의 사진을 나란히 올린 한 게시물은 조회 수 140만회를 넘기기도 했다. 리우를 ‘충성의 상징’으로, 구를 ‘배신의 상징’으로 대비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 구아이링이 공격받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리우 역시 중국 일부 네티즌의 표적이 됐다. 중국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웨이보 등에서는 리우를 향해 “중국을 등진 선수”, “아버지의 정치적 선택을 딸이 이용한다”는 식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네티즌은 리우의 금메달 소식에 “원래 중국계 아니냐”며 국적 문제를 다시 꺼내 들고, 체지방이 높다는 점을 거론하며 “살 찐 돼지”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내고 있다.
현지 언론은 “누가 ‘착한 아시아인’이고 ‘나쁜 아시아인’인가라는 질문이 국가 선택에 여러 요인이 작용했던 두 선수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의 정체성과 커리어 선택을 애국과 배신의 프레임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ldy17@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