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영화계에서 ‘천만 영화’는 하늘의 선택이라고 한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듯, 천만 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대중의 거대한 정서적 결핍을 관통했다는 의미다.

흥행에는 흔한 공식이 있다. 결말이 희망적인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것. 관객이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서며 입소문을 퍼뜨린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과 ‘파묘’, 천만 고지를 눈앞에 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공교롭게도 모두 꺾이고 무너진 ‘패자의 역사’를 다룬다. 뻔한 흥행 공식을 역행하고도 하늘의 간택을 받은 셈이다.

◇‘서울의 봄’ 패자의 분노

1980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정의를 지키려는 군인과 권력을 찬탈하려는 늑대 무리가 맞붙었다. 결과는 늑대의 승리였다. 오롯이 자신의 탐욕만 채우려는 짐승에게 짓밟힌 정의로운 군인을 보며 대중은 분개했다.

이미 판세가 기울었음에도 반란군을 향해 포를 겨누는 이태신(정우성 분)의 기개는 가슴을 울렸으나, 그의 처절한 패배는 관객에게 지독한 무력감과 분노를 남겼다. 그 뜨거운 울분이 1312만 명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파묘’ 패자의 살풀이

무속과 풍수를 앞세운 ‘파묘’의 진짜 적은 귀신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외세에 유린당하고 정기가 끊긴 조선이다. 땅속에 묻혀있던 수치스러운 역사 그 자체다.

이 패배의 흔적을 끌어올려 싸우는 자들은 화려한 영웅이나 권력자가 아니다. 무당과 풍수사, 장의사라는 시대의 변두리에 서 있던 평범하고 끈질긴 민초들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작은 인간들이 연대해 국가의 트라우마를 파내고 뽑아낸 처절한 ‘살풀이’였다. 오컬트라는 마니악한 장르의 한계를 뚫고 1191만이라는 기념비적 관객 수를 기록한 원동력이다.

◇‘왕과 사는 남자’ 패자의 슬픔

단종은 재위 기간 권력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희생된 나약한 소년에 가깝다. ‘왕사남’은 한명회(유지태 분)를 위시한 권력 시스템 앞에서 철저한 무기력을 느껴야 했던 이홍위(박지훈 분)의 여정을 그린다.

대중은 아무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이홍위의 텅 빈 눈동자에 고단한 자화상을 투영했다. 멸문지화를 당할 공포 속에서도 오직 ‘측은지심’ 하나로 이홍위를 품어준 영월 백성들의 순수한 연대는, 각자도생에 지친 현대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3일 기준 921만 관객을 돌파한 ‘왕사남’의 1000만 달성은 시간 문제다.

◇패자가 준 묵직한 위로

세 편의 영화는 얄팍한 ‘해피엔딩’보다 서늘한 ‘현실 직시’가 주는 위로가 훨씬 크다는 걸 증명했다.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앞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현대의 개인은 늘 무기력하고 꺾이기 쉽다.

대중은 이태신의 꺾인 기개에서 억눌린 울분을 터뜨렸고, ‘파묘’ 살풀이에서 상처를 씻어냈으며, ‘왕사남’의 인간적인 연대에서 온기를 얻었다.

억지스러운 해피엔딩 대신, 패자의 뜨거운 눈물과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비추는 것. 각자도생의 시대를 버티고 있는 작금의 대중이 원한 진짜 위로가 아닐까.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