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최근 예능판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 빠르고 자극적인 캐릭터 대신, 시간을 견딘 인물들이 중심에 선다. 웃음을 터뜨리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장된 리액션보다, 관계에서 묻어나는 결이 더 오래 남는다.

지석진의 환갑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SBS ‘런닝맨’에서 펼쳐진 생일 파티는 웃음을 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관계의 기록이었다. 16년을 함께한 멤버들은 평소처럼 놀리기보다, 시간을 인정하는 쪽을 택했다. “익어간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이는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캐릭터의 재정의였다.

지석진은 오랫동안 ‘놀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희생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균형을 유지하는 축이었다. 리더가 아닌 위치에서 흐름을 풀어주고, 긴장을 낮추는 역할이다. 이러한 시간이 축적돼 지금의 ‘푸근함’으로 전환됐다.

유재석은 설계자다. 포맷이 바뀌어도 중심을 유지한다. 차이는 디테일이다. 과거에는 역할이 분명히 나뉘었다면, 지금은 경계가 흐려졌다. MC와 출연자의 구분이 완화되고, 상황에 따라 역할이 이동한다. 유재석은 그 흐름을 조율하는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유재석 캠프’처럼 새로운 형식에서도 비슷한 결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출연자 간의 관계를 먼저 설계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형식이다. 과거 ‘패밀리가 떴다’에서 구축한 가족형 예능의 구조다.

이성민의 등장은 새로운 색깔을 더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투입된 인물에 가깝다. 그러나 ‘풍향고2’에서 보여준 모습은 기존 문법과 달랐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았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 해외여행이 능숙하지 않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신 직접 뛰어들었다. 길을 찾고, 현지인과 대화하고, 팀을 이끌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긴장과 해소가 자연스러운 서사가 됐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배려’다. 기내식에서 스테이크를 제작진에게 건네는 장면, 이동 중 스태프의 컨디션을 챙기는 행동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예능판의 새로운 흐름은 산업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OTT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환경에서는 과도한 설정이 쉽게 피로를 유발한다. 대신 ‘계속 볼 수 있는 인물’이 중요해졌다. 자극적인 순간보다, 오래 유지되는 관계가 경쟁력이 된다.

방송가에서는 최근의 예능 트렌드를 두고 “속도가 느려진 대신, 밀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한 번의 폭발적인 장면보다, 반복해서 쌓이는 장면들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시청자들도 이러한 축적의 과정을 따라가며 인물에 감정을 이입한다는 분석이다. 지석진, 유재석, 이성민 등이 예능판의 중심 인물로 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khd9987@sportsseoul.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