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탈북을 소재로 한 영화는 전형적으로 극적인 사건과 강한 서사를 동반한다. 그러나 영화 ‘하나 코리아’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거대한 사건 대신 한 사람의 하루를 바라보고, 특별한 영웅담 대신 살아남기 위해 묵묵히 버티는 시간을 담아낸다. 신작 ‘하나 코리아’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만들어가는 한 여성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생존극을 그려낸다.

오는 8일 개봉하는 ‘하나 코리아’는 남한에 도착한 탈북 여성 혜선(김민하 분)의 여정을 담는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덴마크, 한국의 합작 프로젝트다.

영화는 남한에 도착한 혜선이 하나원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사회로 나아간 뒤 마주하는 현실을 차분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특별한 갈등 없이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해야 하는 혜선의 시간은 화려한 변화 대신 아주 현실적인 하루하루로 채워진다.

낯선 땅에서의 생존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혜선은 북한에 있는 엄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면서도 간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만류하지만 혜선은 자신의 선택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렇게 치열한 삶 속에서도 혜선은 담담하다. 그 어떤 곤란함 속에서도 ‘비명’따윈 없다.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를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혜선은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은 뒷전으로 미룬다. 혜선의 삶의 목표는 오로지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살아가야 할 이유 앞에서 ‘자아’는 희미해진다. 영화는 가족을 위해 하루를 버티면서도 자신을 위한 삶을 포기해가는 혜선의 삶을 조명한다.

그런 혜선의 내면은 배우 김민하의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 김민하는 메마르고 버석한 표정으로 혜선의 시간을 표현한다. 큰 표정 변화 없이, 절제된 감정선으로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얼굴 안에는 혜선이 살아왔던 상처와 피로가 담겨있다.

덕분에 김민하의 연기는 극적인 장면보다 오히려 평범한 순간에서 빛난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공부하고, 혼자 남은 공간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김민하는 그런 혜선이 가진 무게를 과장하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한다.

앞서 공동 각본을 맡은 최성재 작가는 “탈북민의 이야기는 자칫 스펙터클한 사건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며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한 젊은 여성의 여정을 통해 더 많은 관객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말처럼 ‘하나 코리아’는 탈북이라는 배경을 자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혜선의 삶을 거대한 사건으로 만들지도, 극적인 반전을 통해 신파를 끌어내지도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조용히 쌓아 올린다.

그래서 영화의 흐름은 느리고 잔잔하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사건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혜선이 견뎌내는 매 순간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생존을 위해 선택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치열한 드라마가 된다.

‘하나 코리아’가 보여주는 것은 성공이나 정착의 결과가 아니다.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텨온 한 사람의 시간이다. 김민하는 그 시간을 메마른 얼굴과 절제된 연기로 채워낸다. 크게 소리 내 울부짖지 않아도, 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누군가의 삶은 충분히 치열할 수 있다. ‘하나 코리아’가 도달한 지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한 인간의 조용한 투쟁이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