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하
최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가진 배우 이영하.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트롬본, 로맨스영화… 도전은 계속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건 ‘외 다수’ 시절. ”

‘영원한 오빠’ 배우 이영하(65)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0일 첫방송한 tvN 예능프로그램 ‘바흐를 꿈꾸며 언제나 칸타레2’(이하 칸타레2)로 50여년만에 트롬본에 도전한 데 이어 영화 ‘회항’(문형욱 감독)의 남자 주인공으로 황혼의 로맨스를 그린다. 연극배우로 무명시절을 거쳐 1977년 영화 ‘문’으로 데뷔해 그해 KBS특채 탤런트로 발탁돼 드라마 ‘행복의 문’으로 스크린과 안방극장에서 얼굴을 알렸다. 178㎝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로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유지인 장미희 등 트로이카 여배우 전성시대에 멜로물에서 이들과 수없이 호흡을 맞춘 간판 미남 배우로 큰 인기를 모았다. 영화 ‘안개기둥’(86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87년),‘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91년)로 대종상 남우주연상만 3차례 수상했다. 38년간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인기를 유지해온 몇 안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대학강단(중앙대 예술경영대학원)에도 수년간 섰던 그는 스포츠서울이 주최하는 서울가요대상시상식 심사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이영하는 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이달 말 촬영을 앞둔 영화에서 황혼의 로맨스를 그릴 기대감에 부풀어있는 ‘영원한 로맨시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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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영하.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악기, 로맨스영화. 도전은 계속된다~-‘칸타레2’에서 50년여만에 트롬본에 도전해 화제를 모았다.

정말 오랜만에 트롬본 연주에 도전해 3개월 정도 연습했다. ‘배우가 극중 트롬본 부는 장면이 나오면 해야지’ 하는 각오로 시작했다. 생각같지 않아 첫날 합주 때 다들 실력있는 친구들이라 나는 아예 못불렀다. 좌절감에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한다고 했다가 번복하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한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연습했더니 실력이 금방 쑥쑥 늘었다. 악보도 보이고 음정도 들려 주위에서 다들 너무 발전이 빠르다고 놀랄 정도였다. 금난새 선생님도, 후배들도 굉장히 많이 늘었다고 얘기해줘 더 힘이 났다. 그런데 그 뒤로는 발전이 잘 안되고 멈추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금난새 선생님과 다같이 녹화합주를 하는 건 1주일에 한번이지만 연습실에서도 연습하고 집에서도 커튼을 쳐놓고 옷장 문을 연 채 트롬본 연습을 한다.

-드라마 종영후 쉬지 않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원래 나는 작품을 연달아 하기보다 한 타임 쉬고 새로운 이미지로 나오는 게 정석이라 생각한다. 여행을 가려했는데 음악 프로그램이라 드라마보다 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더라. 연주든 연기든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도전해서 힘들긴 했지만 보람있고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음악을 통해 방송이 아닌 무대나 행사도 가졌다.

출연자중 내가 최연장자라 회식을 자주 주도하고 자식뻘보다 더 어린 슈퍼주니어M의 헨리, 제국의아이들의 정희철, 케이걸즈의 효인, 비밥의 아연 등과 격의없이 지낸다. 지난달 25일 서울 청담동의 재즈클럽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 무대에 올랐고, 지난 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넥센전에 앞서 ‘칸타레2’ 멤버들과 함께 애국가 연주를 가졌다.

-한참 어린 후배들과 격의없이 지내는 비결은 뭔가.

내가 권위적이지 않고 잘 토닥여주는 선배라 한참 후배들도 쉽게 다가오고 잘 따른다. 후배들에 비해 인생의 연륜도 있고 그 친구들보다 많이 살아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 수도 있지 않나. 저번 녹화때도 끝나고 서로 아쉬워하는 분위기여서 희철, 효인, 아연이와 넷이서 한잔하며 친구들처럼 대화를 주고 받았다. 내가 후배일 때는 선배님을 모셨고 선배인 지금은 후배들에게 베푼다. 배우들은 항상 대접을 많이 받아 자기가 쓰기는 쉽지 않지만 나는 베푸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어쩜 늙지 않냐’고 하는데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소통하는 게 비결인 것 같다.

-오랜만에 영화에도 캐스팅됐다. 스크린 활동이 뜸했던 이유는.

2007년 ‘동갑내기 과외하기2’ 이후 8년만에 첫 영화다. 우리 나라 영화가 젊은 친구들 위주여서 나이든 사람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지 않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주인공을 돕는 역할을 했는데 옛날에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며 영화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로도 나왔더라. 영화를 보니 큰 제작비가 들지도 않으면서 감동적이어서 ‘우리는 왜 저런 얘기가 없을까’ 아쉬웠다. 내가 대종상 3번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는데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큰 배역을 생각해 나를 못쓰는 것 같은데 좋은 역이면 큰 역할이 아니어도 좋다. 그동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황혼의 사랑을 연기하고 싶던 참에 ‘회항’이란 작품이 찾아왔다. 너무 기분좋다.

-‘회항’은 어떤 영화인가.

황혼의 사랑을 그리면서 가족에 대해 조명하는 영화다. 극중 조각가이면서 뮤지션인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역으로, 나랑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색소폰도 연주하고 기타도 친다. 황혼의 아픔이나 정서적인 느낌을 알고 있어 제대로 연기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꿈꾸던 역할과 작품이라 머리도 올백으로 넘기고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이달 말부터 촬영한다. 인연인 것 같은 게 내가 처음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 고 박철수 감독님의 ‘안개기둥’이었는데 이번 영화 감독님이 박 감독님의 조감독이었다. 영화에서 OST도 부를 예정이다. ‘칸타레2’를 비롯해 계속해서 음악과 인연이 이어지는 것 같다. 얼마전 촬영한 SBS 드라마 ‘심야식당’에서도 가난한 거리의 악사 역을 맡았다. 연출자 황인뢰 감독과 교감이 이뤄져 한컷도 NG없이 일사천리로 촬영을 마쳤다. 극중 ‘빨간 구두 아가씨’라는 노래도 내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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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영하.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건 ‘외 다수’ 시절-데뷔 이래 무명시절 없이 안방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나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음대에 지원하려고 지원서를 사러가다가 연극영화과 교수가 불러서 (중앙대)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극단에 들어가 심부름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전단지를 돌리다 경찰관에게 쫓겨 도망다니기도 했다. 극단 대표의 가방을 들고 쫓아다니다 주연, 조연, 단역의 이름 뒤 이름도 안나오는 ‘~외 다수’ 생활을 오래 하며 기다림을 배웠다. 외다수에서 단역, 조연, 주조연,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고 드라마까지 하게 됐다. 여배우 트로이카 전성시대 때는 내가 너무 인기 많아 기자들이 우리집 앞에서 잠복하기도 했다.하하.

-데뷔 후 승승장구했는데 가장 애착가는 작품은.

1977년 유현목 감독님의 영화 ‘문’으로 사실상 연예계에 데뷔했다. 유 감독님 영화는 작품성이 있어 당시 영화· 드라마 관계자들 사이에선 꼭 봐야하는 ‘바이블’로 통했다. 방송국에서 이 작품을 보고 나를 픽업해 드라마 ‘행복의 문’을 찍었는데 자고 나니 스타가 됐더라.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지만 아무래도 처음 대종상을 받은 ‘안개기둥’이 기억에 남는다.

- 장남 이상원이 배우로 활동해 대를 이은 연기자 집안이다. 이상원의 근황은.

연기는 자신 외에는 할 사람이 없다. 예전에 프랑스에 갔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장래희망이 다들 요리사라고 하더라. 당시 우리는 대통령, 판·검사, 군인을 꼽을 때라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요즘 ‘쿡방’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학원이 난리났다더라. SNS를 봐도 요리 정보가 많다.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상원이가 미국에서 경영학(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을 전공했는데 와인에 관심이 많다. 요즘 연기 대신 판교에서 둘째 아들과 레스토랑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젊은 시절 다양한 경험에 (자신을)크게 걸어도 된다고 말해왔다. 나도 외다수 시절이 있었으니 오늘날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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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영하.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60대에도 동안을 유지하고 있다. 피부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는 게 있나.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어 순리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얼굴에 손을 대는 건(성형수술) 아닌 것 같다. 단골로 다니는 아름다운나라피부과에서 비타민 앰플을 얼굴에 바르고 매일 20분이상 반신욕을 한다. 적당한 운동도 꾸준히 하는 편이다. 어떨 때는 나랑 동갑인 여배우가 극중 어머니로 나오기도 한다. 하하.

-2007년 (배우 선우은숙과) 이혼한 지 꽤 됐다. 외롭지 않나.

내가 혼자 사는 걸로 다들 아는데 두 아들과 함께 산다. 아들들은 밤 늦게까지 일하고 온다. 서로 생활 패턴이 달라 함께 밥먹을 시간이 드문데 내가 밥과 찌개를 한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고 늘 약속이 있어 인간적으로 외로울 틈이 없다. 지금이 행복하다.

-음악 뿐만 아니라 발레,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다.

잘하는 건 없어도 하는 건 많다. 발레해설, 청소년 오케스트라 해설 등도 했고 미술계 관계자들과 ‘그림계’를 하기도 했다. 중앙대 초빙교수로 대학원생들에게 6년간 강의하기도 했다. 학교일이 보람도 있지만 연기와 병행하려니 힘들더라. 내가 완벽주의라 두가지를 동시에 해도 뭐든 소홀할 수 없어 내 삶의 시간이 부족했다. 문화계 단체장직 제의도 받았지만 조직에 얽매이는 걸 싫어한다. 자유분방하고 낭만주의자라 매일 출근해서 조직을 관리하는 게 적성에 안맞는다.

-연기는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

‘난타’ 제작자로 더욱 유명해진 송승환이 ‘형, 우리는 선택받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처럼 배우로 선택받을 때까지 연기를 계속 할 거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데 무취향이라 번화한 곳이든 오지든 가리지 않는다. 배우는 남의 인생을 사는 사람인데 일에 쫓기다 보면 자기 인생이 없지 않나. 어떤 배우는 1주일에 8일을 촬영하기도 한다. 자유롭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교류하면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조현정대중문화부장 hjcho@sportsseoul.com

◇프로필

▲출생=1950년 3월5일

▲가족관계=2남(상원· 상민)

▲학력=중앙대 연극영화과, 중앙대 예술전문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데뷔=1969~1977년 극단 광장 단원, 77년 영화 ‘문’

▲주요 수상경력=제1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1978년 영화 ‘문’),제25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86년 ‘안개 기둥’),제2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1986년· ‘화녀촌’), 제26회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87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제29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11회 한국영평상 연기상(1991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18회 황금촬영상시상식 남우주연상(1994년 ‘우리 시대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