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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보낸 한해가 너무나도 다사다난했기 때문일까. 동해를 뚫고 힘차게 솟아오른 태양을 향해 국민들이 비는 염원이 남다르다.
지난해는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다. 결국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정치적 격변이 뒤따랐고, 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압축성장 시대를 거치며 축적된 다양한 모순과 갈등구조에 세대갈등이라는 또 하나의 날선 칼이 얹혀져 대한민국의 갈등양상은 중층적 모순구조로 더욱 심화됐다. 그 결과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해진 상황이다.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뜨거운 용광로에 집어넣어 하나로 모으는 게 한국 사회에 던져진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한국 사회가 갈등의 시대를 넘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데 다양한 해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 변방에 머물던 체육의 가치와 역할을 적극 활용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한국 사회의 중층적 모순구조는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그 해결법이 결코 간단치 않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른 알렉산더의 리더십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체육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갈등과 모순구조를 서서히 녹여 형해화(形骸化)된 사회를 단단한 공동체로 묶어내는 정책이 훨씬 유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한국 사회에서 체육의 사회적 통합기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입증된 터다. 최근 사회 전면에 무섭게 등장한 세대간 갈등 해소에도 체육은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체육을 매개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이 함께 땀흘린다면 서로의 처지와 입장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접점을 찾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가장 절실한 의식 개혁에도 체육의 가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가 질적 도약을 이뤄내기 위해선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의식 변화의 핵심은 바로 부끄러움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국은 어느 샌가 부끄러움이 사라진 사회가 됐다. 목적과 결과에만 매몰된 채 과정과 동기, 가치는 생략되고 사라져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압축성장의 시대로 불린 그 기간동안 한국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고속성장의 금자탑을 쌓았지만 반대로 많은 걸 잃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치열한 경쟁과 맞바꿨고,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열한 사회로 전락했다. 모두가 부끄러움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탓이다.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떠받치는 가장 고귀한 가치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결국 부정부패와 반칙이 판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시나브로 사라진 부끄러움이라는 가치를 다시 살리는데 체육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체육의 가장 고귀한 가치 중 하나가 바로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이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룰을 지키고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게 스포츠맨십의 핵심이다. 비굴한 승리보다 떳떳한 패배를 강조하는 스포츠맨십의 기본정신은 부끄러움의 핵심가치와 맞닿아 있다.
새해에는 대한민국이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부끄러움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회복하는데 그동안 사회적 변방에 머물렀던 체육이 크게 쓰여졌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