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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외교의 본질은 정의(正義)가 아니라 강자의 편익(便益)이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바다. 국제질서나 관계가 정의의 잣대로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은 아둔하거나 아니면 통찰력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람일 게다. 국제관계가 강자의 논리로 진행되는 이유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난 유한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의 기저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늘 존재하며 이는 곧 인간이 모든 문제에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결정적 단초가 됐다. 이게 바로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현실주의(realism)의 사상적 기초다. 뜬금없이 현실주의의 사상적 바탕을 설명하는 이유는 최근 한국 체육을 둘러싼 국제외교의 서글픈 자화상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문화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스포츠문화연구소, 젊은빙상인연대,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2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한국의 체육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스포츠 현장의 폭력과 성폭행을 은폐하고, 체육계의 비인권적인 행태를 개선하려는 정부 대책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에 대해 IOC가 즉각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앞으로 보내진 이 편지는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한국 체육외교의 저열한 수준과 체육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이 아직도 체육을 정치진영의 권력투쟁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는 걸 읽을 수 있다.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가 아니라 외부,그것도 외세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행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역사가 전해준 교훈이다. 한국의 제반 모순구조들이 결국 잘못된 역사의식에서 배태됐다는 건 자명하다. 해방 후 한반도의 분단,그리고 6.25라는 참혹한 내전 등, 이 모든 게 우리 스스로의 분열과 그에 따른 외세의 개입이 부른 재앙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최근 한국의 체육문제를 국제적 쟁점으로 비화시킨 시민단체들의 행태는 다소 경솔하지 않았느냐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대한체육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체육을 사유화하고 정치화하면서 개혁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게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산 본질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한체육회와 이 회장 스스로도 국내 체육문제에 IOC를 끌어들인 원죄가 있어서다. 이들은 지난 2015년 IOC에 서한을 보내 “대한민국 정부가 올림픽헌장에 명시된 NOC(국가올림픽위원회)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며 당시 정부 주도의 체육단체 통합을 강력하게 항의한 바 있다.

최근 한국 체육에 대한 IOC의 기대와 관심은 남다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개인적 야망도 이 같은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북한을 국제 스포츠무대에 끌어들여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하고 싶은 게 바흐 위원장의 욕심이다. IOC와 바흐 위원장이 한국의 체육에 거는 기대와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국은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넓어진 활동 공간과 높아진 위상을 활용해 많은 걸 따낼 수 있다. 관계에서 니즈(needs)가 생기면 협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며,협상의 승부는 결국 상대에게 약점을 노출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나 한국 체육은 집안싸움을 이유로 틈만 나면 IOC에 약점을 노출하고 있어 안타깝다.

한국 체육외교의 자중지란은 그냥 넘겨버릴 문제가 아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집안싸움의 결과는 한국 체육에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점증하는 한반도의 평화 가치와 맞물려 2032년 서울-평양하계올림픽 동시개최 등 민감한 이슈들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왜 우린 늘 분열하고 싸우는 걸까. IOC를 활용해도 모자랄 판에 IOC에 칼자루를 쥐어주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체육 주체들의 탈정치화(脫政治化)된 각성(覺醒),진영의 논리로 체육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고언(苦言)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