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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봄날,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새싹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뛴다. 생명의 에너지가 전해주는 감동 때문일 게다. 잠재력을 터뜨리는 봄꽃 같은 존재는 스포츠계에선 학수고대의 대상이다. 지난주 한국 남자 테니스에 한줄기 햇살이 내비쳤다. 한국 남자테니스의 ‘황금세대’ 중 한명인 권순우(21·당진시청)가 지난 5일 남자프로테니스(ATP) 비트로 서울오픈 챌린저 대회에서 일취월장한 기량을 뽐내며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일본 게이오 챌린저에 이은 개인 통산 두 번째 챌린저 타이틀이다. 단순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것을 떠나 경기력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는 게 고무적이다. 지난해 호주오픈 4강의 기적을 연출한 정현에 이어 마침내 투어대회에서 뛸 수 있는 선수로 부상해 테니스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권순우는 정현을 비롯해 이덕희, 홍성찬, 정윤성 등과 함께 한국 남자 테니스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선수다. 이들은 고교시절 삼성 주니어육성프로그램을 통해 길러진 기대주로서 모두가 ATP 투어대회를 겨냥해 땀흘리고 있다. 중학교 때까지 타고난 감각과 정교한 테크닉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권순우는 ‘황금세대’의 경쟁이 치열해진 고교시절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처졌다가 올해들어 숨겨뒀던 잠재력을 활짝 꽃피우고 있다.

챌린저 대회 우승을 놓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냐는 지청구도 있겠지만 권순우의 성공가능성이 예사롭지 않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테니스는 현존하는 스포츠 중 가장 까다롭고 힘든 운동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종목이다. 체력과 기술 그리고 정신력까지, 어느 하나라도 모자라면 프로 선수로 성공할 수 없는 종목이 바로 테니스다. 경기력도 마찬가지다. 서브는 물론 포어핸드 스트로크, 백핸드 스트로크 등 뭐 하나 모자란 기술이 노출되면 끝이다. 아마추어 때는 약점이 있더라도 그런대로 버텨낼 수 있지만 프로 테니스는 그렇지 않다. 약점이 노출되면 집요하게 공략당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는 게 프로 테니스의 냉정한 현실이다. 권순우의 장래성이 높게 점져지는 건 다른 국내 선수와 달리 도드라진 약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별 다른 약점이 없다는 건 투어대회에서 버텨낼 수 있다는 뜻이다. 버텨내면서 가장 중요한 투어대회 경험을 쌓으면 기량의 향상은 따라오게 돼 있다.

색깔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빠른 푸트워크와 라이징볼을 반 박자 빨리 치는 스트로크 감각은 권순우가 내세울 수 있는 기술적인 무기다. 파워가 떨어지면 결국 이를 스피드로 메워야하는데 빠른 푸트워크와 반 박자 빠른 스트로크 리듬감은 힘있는 서구 선수들과 대적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플레이스타일 또한 좋다. 한국 테니스의 고질병인 베이스 라인에서 수비적인 스트로크 싸움을 펼치는 ‘버티는 테니스’로는 이기는 확률이 떨어진다. ‘베이스라이너’로 불리는 이런 방식의 플레이 스타일은 상대가 실수를 해야 이길 수 있다. 기회가 오면 과감히 네트를 점령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몸에 익히지 못하면 투어대회 선수로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최근 권순우는 네트를 점령하는 과감한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변신했다.

팀 케미스트리(team chemistry) 역시 권순우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소다. 투어대회 경험이 풍부한 임규태 코치를 영입한 것을 비롯해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 출신의 이재성 트레이너가 합류해 멋진 팀을 이뤘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마음을 합치니 신바람이 절로 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든든한 병참기지 구실을 하는 에이전시인 스포티즌과 의류 후원업체 휠라까지 가세해 완벽한 지원체계를 꾸렸다. 책임감과 목표의식으로 똘똘 뭉친 인적요소와 지원체계의 결합은 다른 선수들의 눈엔 부러움의 대상이다.

권순우의 급부상에 사그라들던 남자 테니스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경기력도 그렇지만 그의 성공 가능성이 더욱 높게 점쳐지는 이유는 마음가짐이다. 주눅들지 않고 더 높은 고지에 오르려는 도전정신과 부정적인 생각을 훌훌 털어내는 긍정적인 마인드는 권순우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보증수표다. 따뜻한 봄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권순우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