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윤형기자]KBL 최장신 농구선수 하승진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하승진은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019년 5월 FA 1차 협상 기간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길게 느껴졌던 보름 같았다. 거두절미하고 저는 이제 은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협상 테이블에서 팀에서는 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자유계약 시장으로 나가보라고 얘기를 꺼냈다"며 "그 순간 '보상선수도 걸려있고 금액적인 보상도 해 줘야 하는 나를 불러주는 팀이 있을까, 또 다른 팀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말년에 초라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승진은 "11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팀을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이 무척 큰 것은 사실이다. 3년 차 이후에는 우승과 거리가 멀어져 마음의 짐이 무거웠다"며 "기다려 주시고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 구단 관계자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렇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데 보답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KCC 이지스에서 몸과 마음, 열정을 불태웠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선수생활을 하며 너무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것 같다. 이제 주위를 좀 둘러보며 살아가도록 하겠다. 저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08년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하승진은 9시즌 동안 347경기 출전, 평균 11.6득점 8.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004년에는 미국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7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돼 한국인 최초로 NBA에 진출했다.


◇ 다음은 하승진 SNS 글 전문.


2008년 KCC 이지스에 입단을 하고 11년째가 되었습니다. 항상 5월 6월이 되면 연봉협상에 자유계약에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예민한 시기였던 것 같네요.


이번 2019년 5월 FA 1차 협상 기간,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길게 느껴졌던 보름 같았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저는 이제 은퇴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협상테이블에서 팀에서는 재 계약 의사가없으니 자유계약 시장으로 나가보라고 힘들게 얘기를 꺼내주셨습니다. 아놔 이런...그 짧은 찰나의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다른 팀으로..? 보상선수도 걸려있고 금액적인 보상도 해줘야 하는 나를 불러주는 팀이 있을까..? 혹시 다른 팀에 가더라도 적응하고 잘할 수 있을까..? 내가 KCC 유니폼말고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잘할 수 있을까..? 말년에 이팀, 저팀 떠돌다 더 초라해지는 거 아닌가..? 이런 고민들을 해보니 전부다 힘들 것 같더군요. 결국 아쉽지만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11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희노애락을 함께해온 이 팀을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이 무척 큰 게 사실입니다. 신인 때, 3년 차때 우승을 하고 그 이후론 우승과 거리가 멀어 마음의 짐이 꽤나 무거웠습니다. 기다려 주시고 응원해 주신 사랑하는 팬 여러분 구단 관계자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팬들에게도 KCC 구단에게도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불알 두쪽만 달고서 이 팀에 들어온 스물네살 청년이 11년 동안 이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둘도 없이 사랑하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 가족들과 함께할 든든한 울타리도 생겼구요.


이 팀에서 제가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수있도록 도와주신 KCC구단과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렇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데 보답해 드리지 못해 진심으로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KCC에서 좋은 선수들도 영입하고 함께 손발을 맞추던 기존의 선수들도 성장하여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우승에 도전하는 KCC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예전에 몇몇 기자분들께서 '나중에 은퇴하면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라는 질문을 두세 번 정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대답일 수도 있는데 전 한참 생각하다 대답이 안 떠오른다며 몇 년 뒤에 은퇴하면 다시 물어봐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대답할 수 있을것같네요. 'KCC 이지스에서 몸과 마음, 열정을 불태웠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선수 생활을 하며 너무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것 같네요. 이제 주위를 좀 둘러보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고작 인생의 3분의 1이 지나간 것일 뿐.


이제부터 넓은 세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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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