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서울 중앙지법 전경.  이선율 기자.

[스포츠서울 이선율기자] 150억원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와 관련해 고 구본무 LG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LG 총수 일가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서울 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은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위로 기소된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LG 총수 일가 14명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15일 열었다.

이날 재판의 핵심 인물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지만 나머지 LG 일가 전원은 재판에 참석했다.

검찰은 이들이 통정매매(주식을 특정한 시기·가격에 거래할 것을 미리 합의한 뒤 매매하는 것)방식으로 주식을 거래해 세금을 포탈했다고 판단, 이를 집중 추궁했으나 LG 총수 일가 측 변호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KakaoTalk_20190516_014825528
150억원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를 받는 LG총수일가가 재판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선율 기자.

이번 재판에서 검찰은 주식을 관리하고 양도 소득세 납부 업무를 총괄하는 LG 전·현직 재무관리 팀장을 중심으로 의도적 허위 거래를 한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를 따져 물었다. 특히 이를 주도하고 지시한 최종 책임자가 주식의 실소유자인 LG그룹 총수 일가로 보고 연관성을 밝히고자 했으나 LG 측 관련 실무자들 모두 “모르겠다”는 진술을 하면서 양측간 긴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해 4월부터다. 당시 검찰은 국세청의 탈세 고발로 LG그룹을 압수수색했고, 총수 일가 사이의 주식거래를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닌 일반 거래인 것처럼 꾸며 156억원의 양도소득세를 지불하지 않은 혐의로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15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여년간 ㈜LG와 LG상사 주식을 102차례에 걸쳐 장내에서 거래했다. 현행법상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간 지분 거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거래액에 20%를 할증한 금액을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이를 일반거래인 것처럼 꾸며 156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정황이 국세청 조사를 통해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피고인들은 모든 혐의에 대해 부인했지만 검찰은 LG 총수 일가가 불특정 다수에게 양도한 것처럼 위장해 사주일가 내 특수 관계자가 양도할 때 낼 양도소득세를 낮게 신고해 포탈했다고 판단했다.

검찰 측은 “김 모씨(현 LG이노텍 전무·전 LG재무관리 팀장)와 하모씨(현 LG재무관리 팀장)는 실무자를 통해 증권사의 통정매매 주문지시를 한 후 지분손실 없이 동일하게 LG사주일가간 거래가 체결되도록 했고, 특히 사주일가 주식의 매도와 매수를 동일한 시간대에 같은 가격으로 주문해서 불특정 다수인 시장 참여자들이 전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사주일가간 거래만 이행되게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세청의 고발장 등 증거로 김 모씨와 하모씨가 증권사 직원과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LG사주일가가 지분손실없이 동일하게 거래가 체결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HTS시스템을 보고, 직원들과도 수시로 연락을 취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LG 일가 주식 매매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증권사에 기록이 남는 유선전화 대신 휴대전화로 주문하고 주문표를 작성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한 점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동일한 시간대에 같은 가격으로 주문했던 사례도 우연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LG재무관리팀이 전화주문을 했는데도 구본길 희성전자 사장이 직접 매장을 들러 주문을 넣은 것처럼 위장했다는 내용의 일부 직원들의 진술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김모씨, 하모씨를 포함해 증권사 직원들은 주식매매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행적으로 휴대전화가 편리해서 이용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검찰은 LG재무관리팀과 증권사가 합의해 주식거래를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 측은 “LG 재무관리팀은 NH투자증권 직원에게 전화 통화를 통해 주식 거래를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화 녹취록을 보면 ‘잠깐만요, 준비됐어요? 잠시만요. 구본준 계좌 비밀번호는 0000...오늘 (주식) 깔끔하게 들어갔네요’ 등 내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은 과거 LG계열사로 LG그룹이 소지하고 있는 트윈타워 건물에 입점해 계속해서 그룹 사주일가 주식거래를 전담해왔다. 검찰은 “LG는 과거 계열사였던 NH투자증권을 상대로 VIP(핵심) 고객으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증권 실무자들도 이들의 요구사항을 거절하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검찰은 해당 주식거래 중에 경영권을 승계받은 구광모 회장이 매수자로 참여한 거래도 포착했다. 검찰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고 구본무 회장의 부인과 장녀 등이 주식 양도대금을 어디에 썼는지 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LG사주일가간 증여를 비롯해 구광모 등 증여가 가장 많고 LG계열 물류회사인 판토스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LG 일가 측은 “주식거래는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장내거래 금지 원칙을 훼손하지 않았다”면서 “사기 등 부정한 방법을 쓴 적도 없어 조세범 처벌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검찰은 구 회장 등 LG 총수 일가 14명에 대해 탈세 혐의 사건의 직접 행위자는 아니지만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 약식기소는 검찰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면서 법원에 징역형보다 벌금형이 합당하다고 요청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법원은 별도의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고 재무관리팀 직원 사건과 병합해 심리하고 있다.

한편 LG 총수 일가 조세포탈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22일 오후에 진행된다.

melod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