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엄마 선수라는 편견 깨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그때의 환희와 감동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컬링을 인기 스포츠 반열에 올린 ‘안경 선배’ 김은정(29)의 마음이 유독 그렇다. 영광 뒤엔 숨은 상처가 있었다. 스킵 김은정이 이끈 ‘팀 킴(Team Kim·경북체육회 여자 컬링)’은 올림픽 이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지도자 갑질 횡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어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사이 김은정은 결혼과 임신을 거쳤는데 태교를 포기하더라도 팀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지난 24일 대구 한 시내 카페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그는 “우리가 처음 호소문을 냈을 때 일각에서 ‘얘네들이 돈 때문에 그런가’하는 시선으로 보더라. 선수 인권만으로는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가 싶어서 (임신 중이었지만) 무리해서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마침내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합동 조사 결과 팀 킴 지도자들의 갑질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시름을 덜어낸 김은정은 지난 5월19일 아들을 출산했다. 팀 킴은 김은정이 출산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김경애가 스킵을 도맡으면서 국내, 국제 대회에 복귀했다.
‘팀 킴’은 곧 완전체가 된다. 내달 1일부터 11일까지 강릉컬링센터에서 2019~2020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는 2019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지난해 풍파를 겪으면서 태극마크를 춘천시청에 내줬는데 이번에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엄마 선수’ 김은정은 선발전엔 후보로 등록한다. 임신 때부터 김경애의 조력자 구실을 한 그는 아직 무리하게 아이스에 서진 않는다. 다만 스킵의 경험과 노하우가 매우 중요한 종목인 만큼 동료 곁에서 함께 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아이스에 복귀하는 시기는 9~10월로 잡고 있다.
|
|
◇태명 ‘땡큐’로 지었던 이유
초보 엄마가 겪는 어려움은 이만저만 아니다. 대게는 ‘폭풍 육아’가 뒤따른다. 그런데 김은정은 “육아가 힘들긴 한데 생각보다 (새벽에 안 깨고) 잘 잔다. 배고플 때만 깨더라. 일찌감치 효자가 되려나 보다”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 그가 ‘효자’라는 단어를 꺼낸 건 사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다. 스킵의 존재가 워낙 큰 컬링인지라 김은정은 결혼 직후 최대한 이르게 2세 계획을 세웠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2022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팀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는 “계획한 대로 (임신이) 되지 않으면 4년 뒤 올림픽 이후에 다시 출산 계획을 세울까도 고민했다”며 “그런데 계획대로 임신까지 이어졌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태명을 ‘땡큐’로 지었다”고 말했다. 컬링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자신의 비전을 존중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김은정은 “임신 중 (지도자 논란으로) 힘들었을 때 내가 너무 빠져드니까 남편이 건강에 대해 염려했다. 그럴 땐 ‘너무 나만 생각하는 것인 아닌가. 아이와 남편을 생각하면서 조절하자’고 다짐했다”고 떠올렸다.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그간 컬링 뿐 아니라 여러 아마 종목에서 활약한 여자 선수들이 결혼, 임신과 함께 현역에서 대부분 사라지는 풍토에 아쉬워했다. 그는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아이를 낳으면 운동 계속할 것이냐’는 말이었다”며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다. 엄마 선수로 정말 성공하고 싶다. 물론 욕심을 내면 나와 팀이 힘들어진다. 엄마라는 수식어를 빼고 컬링 선수 김은정으로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캐나다의 컬링 스타)제니퍼 존스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선수 생활을 한다. 캐나다는 (선수 복지 등이)워낙 잘 돼 있지만 대회장에서 경기에서 이긴 뒤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엄마 보고 싶지?’하면서 인사하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우리 문화는 (아이 키우는 선수들이) 주눅들 때가 있는데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
|
◇어색했던 ‘아이스 밖 컬링’
출산과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는데 이제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는 “아이스 밖에서 경기를 보는 게 참 적응 안 되더라. 다만 경기할 땐 알면서도 급박한 상황에서 정리가 안 될 때가 있었는데 밖에서 보니까 여러 가지 정리가 됐다. 나름대로 배움이 있더라”고 말했다. 최근 전국동계체전과 러시아 국제대회에서 스킵을 맡은 김경애는 “은정 언니가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고 만족해했다. 이에 대해 김은정은 “사실 예전엔 (결정적인 샷을 책임지는) 스킵의 부담감이 너무 싫었다. 어려운 샷이 남으면 한숨부터 나왔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냉정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더라”며 “난 고민이 많고 정적으로 샷을 하는데 경애는 자신감이 있게 샷을 하더라”고 치켜세웠다. 전술적 지시를 많이 해야 하는 스킵에 익숙한 터라 밖에서도 ‘말을 많이 했다’고 고백한 그는 “경애가 잘하는데 입을 다물고 있을 걸 그랬다”고 껄껄 웃었다.
김경애를 비롯해 동료들은 김은정의 합류를 고대한다. 심리적, 기술적으로 그의 합류는 재도약을 꿈꾸는 팀 킴의 확실한 무기다. 김은정은 “그저 하던 대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고 싶다”며 “좋은 날을 경험했지만 그렇지 않은 팀처럼 초심으로 베이징 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팀 킴의 명예회복과 올림픽 금메달 재도전, 그리고 ‘효자 땡큐’에게 평창 최고 스타였던 엄마의 활약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또다른 꿈이다. 김은정의 선수 인생 제2막이 열린다.
|
kyi0486@sportsseoul.com



![[포토]신중하게 스톤 놓는 \'안경 선배\' 김은정](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2019/06/28/news/201906280100196510014323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