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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최초는 아니지만 여전히 생소하다. 한국인 프로 축구선수가 북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녔다면 믿겠는가. 앞서 지난해 8월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 소속 송의영(29)이 북한땅을 밟고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올해는 서남아시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프로팀 아바하니 다카 소속으로 이태민(21)이 뛰었다.
아바하니는 지난 21일과 28일 북한의 4.25 축구단과 AFC컵 인터 존 플레이오프 준결승 1~2차전을 치렀다. 먼저 홈에서 4-3으로 승리한 아바하니는 유리한 위치에서 평양 원정 경기를 풀어나갔지만 0-2로 패했다. 이에 따라 4개 지역 챔피언간 맞붙는 인터 존 플레이오프 결승에는 4.25 축구단이 올라가 오는 9월 25일과 10월 2일 베트남 하노이와 AFC컵 결승전행을 두고 격돌한다.
이태민은 5일 스포츠서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아바하니에서 뛴 한 달 남짓의 시간동안 겪은 진귀한 경험을 소개했다. 1차전에 4.25 축구단에 먼저 승리를 챙긴 그는 가볍고 설레는 마음 반, 무섭고 긴장되는 마음 반으로 북한으로 향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북한 직항이 없어서 아바하니는 홍콩과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 땅을 밟았다. 이태민은 “북한 항공사지만 비행기 내부가 평범한 국내 항공사와 다를 게 없었다. 북한 승무원에게 신기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나를 경계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북한에 대한 첫 기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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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틀 전 북한에 입국했지만 평양 거리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그는 “시내는 서울처럼 회사원, 교복 입은 학생 등이 보이며 도심 느낌이 났지만 크기가 작았다. 도심에서 근처 논, 밭이 보일 정도였다”며 “정해진 경로에 따라 이동하는 버스를 탔다”고 설명했다. 외출을 만류하는 북측 가이드 때문에 호텔에만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 소리가 나서 호텔에서 5분 정도 걸어나갔는데 가이드가 쫓아와서 ‘바로 들어갔으면 한다’면서 그날이 마침 중·고등학생 운동회 개념의 ‘청년의 날’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바로 호텔로 돌아갔다. 우리는 아직 전시 중이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헛짓 안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평양의 1급 호텔인 서산호텔을 숙소로 사용한 이태민은 호텔 직원들과 마주한 경험도 떠올렸다. 그는 “밖을 나가지 못하니 내부에서 기념품을 사려고 했다. 사고 싶은 것을 골라두고 지갑을 가져 오니 가격이 두 배로 뛰었더라. 불친절해서 내겐 안 팔겠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동료들은 제 가격에 샀는데 말이다”라고 아쉬워했다.
4.25 축구단과 2차전이 열린 김일성경기장에서는 관중을 기억하기도 했다. 이태민은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는데 장내 아나운서가 출전 선수들의 이름을 호명하더라. 이때 ‘이태민’이라고 내 이름이 불리자 관중석에서 웅성웅성거렸다. 어떤 관중은 ‘저 남조선 새끼 누기야?’라고 말했다. 궁금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비춰질까봐 쳐다보진 못했다”며 “더한 상황을 미리 준비해서 괜찮았다.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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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념도 뛰어넘는 게 스포츠다. 둥근 축구공을 차며 함께 땀흘리면 친구가 되는 법이다. 이태민은 “1차전부터 4.25 축구단과 경기할 때 과격하게 하는 걸 피했다.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1차전에는 한 선수가 근육 경련 때문에 쓰러져 있을 때 말을 걸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덥지 않냐. 음식 맞냐’고 물었더니 ‘이태민 선수도 방글라데시 생활 괜찮냐‘ ‘먼 곳까지 와서 고생한다우’ 등 답해줘서 놀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경기 전 내가 긴장하고 있으니 4.25 축구단 관계자가 ‘태민이 잘하라우’라고 격려해준 것이었다”고 밝혔다.
1차전을 통해 4.25 축구단과 좀 더 가까워진 이태민은 그들의 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2차전에도 벤치 선수부터 코치진, 축구단 관계자들과 인사했다. 4.25 축구단의 오윤손 감독과도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태민은 “오 감독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봐서 서울인데 일부러 ‘왕십리’라고 말했다. 그러니 ‘아, 서울 사람이네’라고 바로 알아듣더라”고 설명했다. 또 3박4일간 함께한 가이드에 대해서도 “북한의 풍경이 한국과 같다고 하니까 ‘얼른 통일돼서 여기서 경기 뛰러 오라’며 ‘여기서 머무는 동안 열심히 해야 한다. 안 그러면 통일되면 대표팀 못 뽑힌다’고 농담하더라. 북한 감독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한 이태민은 “내가 겪은 북한은 적대적인 감정은 없었지만 사람들 마음 속 경계심을 느꼈다. 기념품을 구매하는 동료를 위해 통역을 해주면서 점원은 내게 까칠하게 굴었다. 그러나 4.25 축구단 감독과 관계자는 내 고향도 묻고 관심을 갖고 대화했다. 처음 봤지만 처음 본 사이 같지 않았다. 내게 대화를 걸어준 게 정이 느껴져서 감사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purin@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