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세종과 장영실의 경쾌한 과학이야기로 문을 열지만, 알고 보면 두 사람의 진한 우정 이야기다.
16일 오후 ‘천문:하늘에 묻는다’(허진호 감독·이하 천문)가 베일을 벗었다.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려 했던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숨겨진 이야기. 다양한 업적을 세운 천재적인 왕 세종과 그가 첫눈에 알아본 천재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는 소재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한석규와 최민식 두 연기신(神)의 연기가 그 기대를 충족시킨다.
영화는 쏟아지는 비 속에 행궁으로 이동하는 세종의 모습으로 시작, 안여(安與·임금이 타는 가마)사건의 긴박함을 보여주자마자 사건 발발 4일전으로 돌아가 세종에게 달려가 천문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읍소하는 장영실의 모습으로 앞으로의 전개에 궁금증을 더했다. 그러나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시간을 또 다시 20년 전으로 되돌려 세종이 장영실을 처음 만나 물시계를 만들게 된 이야기를 펼치면서부터. 세종이 기상관측 등을 관장한 관서였던 서운관에서 외국에서 들여온 서책에 그려진 물시계의 원리를 궁금해 하던 중 관리들이 제대로 답을 못하고, 관노였던 장영실은 그 답과 함께 물시계를 “조선의 것으로 조선에 맞게 만들면 된다”는 말을 하면서 세종의 눈에 들게 된다.
|
뒤이어 서운관에서 밤을 새며 끊임없이 연구하며 발명품을 만들어낸 장영실과 이를 어여삐 여긴 세종. 이들은 귀천을 떠나 같은 꿈을 꾸는 친구가 되며 우정을 쌓았다. 무엇보다 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을 흐뭇하게 한 건 이들을 연기한 한석규와 최민식의 명불허전 연기력 덕분이었다. 영화 ‘쉬리’(강제규 감독) 이후 20년만에 재회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던 두 사람은 ‘천문’이 역시나 연기맛집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기력을 펼쳤다. 세종의 영특한 눈빛부터 장영실의 걱실걱실한 성품까지 캐릭터에 꼭 맞는 모습을 한 한석규와 최민식은 영화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영화의 재미를 높였다. 군데군데 소소하게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대목들이 긴장을 풀게 한 것. 그럼에도 두 배우의 연기 진면모는 세종과 장영실의 표면적인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면서 확연히 드러났다.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마음이 표현될 때 엄청난 폭발력을 일으켰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그 어떤 로맨스보다 진하고 애잔하게 그려낸 건 한석규와 최민식의 시너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배우들의 연기 외에도 장영실의 각종 발명품들과 서운관의 모습은 잘 알지 못했던 역사의 한 편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영화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다. 특히나 교과서에서나 봄직한 발명품들이 차례로 선보여지며 조선의 과학 부흥기를 제대로 표현해주는 등 미술적인 볼거리는 영화를 실감나게 하는 핵심요소가 아닐 수 없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군신간의 정치 이야기는 식상할 법도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로 충분히 극복이 된다. 또한, 신분을 떠나 친구가 된 세종과 장영실을 경계하는 시선들, 명나라를 따르는 제후국의 도리에 맞지 않다며 장영실과 천문사업을 반대하는 고관대작들의 모습 등은 당시 세종은 물론 관객들마저 한숨 쉬게 하지만, 그마저도 역사가 현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주는 반면교사의 교훈들로 볼 수 있다. ‘천문’이 제목으로 하늘에 묻는다고 한 건 결국 생각이 시대를 뛰어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는 26일 개봉.
cho@sportsseoul.com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