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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이런 썩어빠진 선거를 도대체 왜 해야만 하는가?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 후유증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체육의 자율성 확보가 법개정 취지이자 명분이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체육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자기모순에 빠져 실패한 정책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선거과정도 그랬지만 선거이후는 목불인견(目不忍見),그 자체다. 이게 체육인지 정치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혼탁해졌다. 이러한 법개정을 주도한 정치인들은 법개정 취지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이번 선거를 도대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꼭 되묻고 싶다.
체육의 정치화를 부추긴 이번 선거에서 대한체육회의 책임 또한 자유롭지 않다. 체육인 대부분이 선거를 통한 지방체육회장 선출을 극구 반대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대한체육회는 오히려 한 술 더 떠 선거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체육회가 선거를 강행한 데는 논리와 철학도 없었다. 선거 강행에 대한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집요한 질문에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었다. “정치권이 이 사안에 집착하고 있어 체육회로선 저지하기 힘들다.”
궁색한 변명에는 늘 그렇듯 의도를 감춰야 할 절박함이 도사리고 있다. 정보가 하나 둘씩 쌓이면 거짓과 변명에 꽁꽁 숨어있던 진실의 길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체육회장 선거 이후 수면 아래에서 급박하게 진행됐던 일들은 대한체육회의 숨은 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선거 후 박원하 당선자에게 사무처장직에 대해 훈수(?)를 뒀다. 본인은 순수한 의도의 추천이라고 하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불쾌함을 느낄 법한 조언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회장은 자신이 믿는 정창수 사무처장의 연임을 요청했고,박 당선자가 이를 거절하자 정치라는 우회로를 택하는 무리수까지 뒀다.
이 회장은 지난 21일 박원순 서울 시장까지 만나 사무처장 자리에 계속 집착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정 처장 카드를 접은 그는 새로운 두 명의 인사를 추천했다. 이 회장이 추천한 두 명의 인사는 종교 편향성 문제로 늘 논란이 됐던 L씨와 종목단체에 파견나가 있던 K씨였지만 결국 박 당선자의 거부로 이 또한 무산됐다.
서울시체육회를 통해 이번 지방선거를 분석해보면 그동안 속을 답답하게 했던 궁금증이 하나 둘씩 풀린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대한체육회는 이번 지방선거에 적극 개입했고,이에 따라 한국의 체육지형이 급격하게 재편됐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경기인 출신의 엘리트체육 지형에서 비경기인 출신의 생활체육 지형으로 구조변화를 이룬 게 이번 선거의 결과다. 17명의 광역 체육회장 가운데 생활체육 인사가 무려 10명이나 당선됐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변화의 진폭에는 그만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대한체육회가 지방선거를 강행한 이유는 결국 이 회장의 체육권력 유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번 선거를 오는 12월에 열리는 제 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축적된 정보가 알려주는 진실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 체육의 지형변화를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유력 당선자를 지원해주면서 그들의 호감을 사는 데 전력을 다했다. 선거 지원도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가리지 않고 양 다리를 걸쳐놓는 전략을 택했다. 당선자에겐 “우리가 지원해서 선거에서 이겼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 회장은 아시다시피 엘리트체육의 대변자로 대한체육회 수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통합 체육회장 선거가 대의원제도가 아닌 선거인단 제도로 바뀌면서 새로운 선거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거인단 제도하에서는 생활체육쪽 표를 얻지 못하면 당선되기 힘들다고 보고 이번 선거를 자신의 지지층을 넓히는 발판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서울시 체육회장 선거에서도 양 다리 전략을 구사했다. 자신의 심복들은 생활체육을 대표하는 후보자의 편에서 선거운동을 하게 하고,또 몇몇 인사는 박원하 당선자 쪽에 붙이는 기상천외한 머리를 썼다.
그렇다면 왜 이 회장은 서울시체육회처럼 지방체육회 사무처장 자리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며 집착할까. 바로 오는 12월에 열리는 대한체육회장 선거와 맞닿아 있다. NOC(국가올림픽위원회) 몫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직을 꿰찬 이 회장의 입장에선 차기 회장 선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지면 필생의 꿈이었던 IOC 위원 자리를 허무하게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체육회 사무처장은 지방 체육행정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자리인 만큼 여기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으면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이 회장의 노림수다.
이번 선거는 정치권의 정치공학적 셈법과 체육권력을 연장해야 하는 개인의 검은 욕심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괴물이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모든 게 오는 12월 대한체육회장 선거와 맞닿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육권력을 악착같이 지켜내기 위한 꼼수와 편법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벌써부터 감지되는 사악한 기운이 영 심상치 않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