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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보가 공유되고 각 조직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고 있는 마당에 밑천 드러나는 짓을 했다간 자칫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뻔히 눈치채고 있는데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만 더욱 많아지고 날카로워질 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잠하던 국내 체육계가 최근 골프 쪽 문제로 시끄럽다. 골프는 한국 체육계에선 복 받은 종목으로 꼽힌다. 다른 종목에 견줘 두둑한 곳간을 보유한 덕분인지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까지,한마디로 등 따시고 배부른 종목이 바로 골프다. 특히 연중 별 탈 없이 치러지는 투어대회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한 덕분에 순풍에 돛단 쾌속항진을 펼치고 있는 게 바로 남녀 프로골프 기구다. 그런 프로 골프가 최근 약속이나 한듯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한국 프로골프협회(KPGA)는 직원 두명을 특별 채용해 구설수에 올랐다. 집행부 고위 임원이 공정성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맞지 않게 친한 사람의 아들을 뽑아 눈총을 샀다.
한국 여자골프협회(KLPGA)는 한술을 더 떴다. KLPGA의 투어대회를 전담하는 자회사인 KLPGAT 대표를 공모하면서 상식 밖의 일을 저질렀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주위의 비아냥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공모 절차와 방식에 어긋나는 인사를 단행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모집 공고에는 1명의 대표이사를 뽑기로 했지만 난데없이 공동대표 체제로 바꿔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새롭게 공동대표로 뽑힌 사람이 이번 공모의 전형위원이라는 점이다. 인사의 적합성을 따지고 평가하기 위해 투입된 사람이 해당 인사의 주인공으로 선발되는 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공동대표에 뽑힌 그 전형위원은 공모 원서도 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공모에서 원서도 내지 않은 사람이 선발되는 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공모란 민감하거나 중요한 인사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제도다. 자리에 맞는 적합한 인재를 외부로부터 영입하려할 때 다양한 인재 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인 만큼 공고에 명시된 절차와 방법은 그대로 따라야 뒷말이 없다. 그러나 민도(民度)가 낮은 사회에선 공모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곧잘 활용되기도 한다. 미리 인사를 내정한 뒤 공모의 절차를 밟는 방식이다. 이번 공모에서도 짬짜미를 통해 인사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흘러나왔건만 정작 외부에서는 능력있는 많은 사람들이 출사표를 던져 최종 발표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공고에도 없던 공동대표라는 황당한 결정으로 KLPGA는 수준이하의 조직문화를 대외적으로 노출하고 말았다.
일부에선 이번 공모를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힐난했다. KLPGA 터줏대감인 강춘자 이사가 KLPGAT 대표이사에 사실상 내정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모에도 없었던 공동 대표는 이러한 예상을 빗나가게 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공모의 명분과 가치를 훼손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할까. KLPGA의 추락한 권위와 실추된 명예는 누가 보상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체육행정을 책임져야 하는 문화체육관광부도 이 참에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프로 스포츠를 제외한 국내의 다른 스포츠는 사실상 기금(국민체육진흥기금)과 국고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 정부로부터 감시받아야 하는 법률적 근거를 갖고 있다. 정부가 스스로 물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프로 스포츠를 자율성이라는 명분속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 이유는 프로 스포츠를 관장하는 기구에 이사회라는 나름의 견제장치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기구의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감시와 견제의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번 공모만 해도 그렇다. KLPGA 이사회는 대부분이 여자 프로골퍼라는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폐쇄적인 조직인 만큼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대로 입증됐다. 프로 스포츠기구는 이사회만 무력화시키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맘껏 휘두를 수 있다. 프로 스포츠기구를 사실상 방치해온 문체부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에서는 늘 그렇듯 불온한 생각이 싹트게 마련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