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입단식에서는 모두가 밝게 웃으며 청사진을 그린다. 구단은 거액을 들여 영입한 선수가 기대대로 맹활약을 펼치고 팀을 더 높은 곳으로 올려주기를 바란다. 선수는 ‘0’하나가 더 찍힐 계좌를 머릿속에 그리며 새 출발을 다짐한다. 기도하며 영입을 바랐던 팬들은 입단식을 보면서 파티를 연다. 메이저리그(ML)를 비롯해 프로스포츠에서 대형 프리에이전트(FA) 영입은 축제다. 미소와 긍정적인 전망, 그리고 행복 바이러스가 가득하다.
하지만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는 못한다. 부상 혹은 부진으로 입단 당시 영웅이 몇 년 후 철천지원수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트레이드 혹은 방출되는 모습도 흔하다. 2001년 12월 당시 한국 스포츠선수 중 차원이 다른 계약을 체결한 박찬호도 그랬다. 부상 악령으로 인해 아쉬움만 남긴 채 빅리그 두 번째 유니폼을 벗었다. 2001년까지 다저스 에이스로 활약했던 그는 2002년을 앞두고 텍사스와 5년 65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당시 텍사스 구단 투수 FA 최고 금액을 경신하며 MVP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함께 투타 중심선수로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박찬호는 텍사스에서 부진했고 계약 4년차에는 텍사스가 아닌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었다.
역대 한국 스포츠 선수 최고 규모 계약은 텍사스 추신수다. 추신수는 2013년 12월 텍사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 빅딜을 체결했다. 올해 계약 마지막해를 보내는 가운데 결말은 헤피엔딩과는 거리가 있다. 여전히 타석에서 빼어난 생산력을 자랑하지만 첫 해 부진이 대형계약에 오점으로 남아있다. 우승을 바라보고 추신수를 영입해 정상급 타선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텍사스는 2014년 67승 95패 지구 최하위로 추락했다. 2013년 빅리그 최고 리드오프 중 한 명이었던 추신수는 타율 0.242 OPS(출루율+장타율) 0.714 13홈런 58득점에 그쳤다.
물론 이후 추신수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2015년 후반기 괴력을 발휘하며 텍사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2018년에는 빅리그 현역선수 최다인 52연속경기 출루를 달성했고 올스타로 선정됐다. 하지만 텍사스의 목표는 추신수 영입과 동시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2014년과 2015년 정상등극을 목표로 삼았으나 챔피언십시리즈에도 오르지 못했다. 지난 3년 동안에는 기약없이 리빌딩을 반복했다.
지난해 12월 류현진도 박찬호 혹은 추신수와 같은 기대와 우려 속에서 대형계약을 체결했다. 류현진은 토론토 구단 역사상 투수 최고 금액인 4년 8000만 달러에 사인했다. 토론토와 류현진의 사인은 토론토가 2년의 리빌딩을 마치고 승리를 응시하는 청신호였다. 토론토 특급 유망주 보 비셋은 류현진 영입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로스 애킨스 단장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며 에이스 합류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스프링캠프부터 류현진을 향한 현지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됐다.
그리고 류현진은 자신을 향한 관심을 기량과 결과로 응답하고 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빅리그 특급 선발투수 대열에 합류한 그는 토론토에서도 특유의 ‘아트 피칭’을 이어간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구종을 절묘하게 배합해 정교하게 꽂아 넣는다. 2019년 다저스 구단과 LA 현지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토론토 구단과 토론토 현지언론은 류현진에 푹 빠져버렸다. “오늘도 류현진은 에이스답게 마운드를 지키고 승리를 이끌었다”, “진짜 투수가 무엇인지 류현진을 통해 배운다”, “토론토 어린투수들은 류현진을 공부하며 배워야 한다” 등 류현진을 향한 극찬이 쏟아진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 FA 대형 계약도 그렇다. 계약 첫 해부터 기대에 부응하면 해피엔딩을 향한 지름길이 열린다. 맥스 슈어저(워싱턴), 존 레스터(컵스). JD 마르티네스(보스턴)의 FA 계약이 그랬다. 모두 새 유니폼을 입자마자 변치않은 활약으로 팀의 중심이 됐고 우승까지 이끌었다. 이제 류현진이 코리안빅리거 징크스를 깨뜨리며 FA 계약의 또다른 모범사례를 만들고 있다.
bng7@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