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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몸과 몸이 부딪히며 땀방울이 튀는 진정한 삶의 무대가 바로 스포츠의 세계다. 스포츠를 향한 인간의 열정과 도전은 도무지 한계와 경계가 없어 보인다. 끝없는 기록의 경신과 경기력의 향상은 무얼 의미하고 있는가? 인간의 본질적 콤플렉스인 생명의 유한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죽기 위해 태어난다는 인간이 스포츠를 통해 신의 불멸성을 추구한다는 탁견은 인간이 스포츠에 탐닉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이끈 부르주아가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담아내기 위해 고안한 근대 스포츠는 당시의 시대적 사조인 민족주의와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급성장했다. 스포츠는 경쟁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고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을 연료로 삼아 브레이크 터진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했다. 멈춤과 위기를 모르고 마구 내달리던 스포츠가 예기치 않던 장애물을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유령이다. 이 유령이 스포츠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사실상 스포츠의 존립 자체를 무너뜨릴 만큼 극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어쨌든 스포츠는 태동이후 최고의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스포츠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대면사회에서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그런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언텍트 시대에선 스포츠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며 무관중 경기나 현장성을 상실한 ‘보는 스포츠’는 어딘지 모를 어색함이나 생경함, 더 나아가 사이비라는 느낌마저 들게 할 뿐이다.

산업으로 덩치를 키운 스포츠는 팬데믹에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물경 1500조원 규모의 세계 스포츠산업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사실상 쑥대밭이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은 스포츠산업의 플랫폼인 경기 자체를 열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글로벌 스포츠의 연쇄적 봉쇄(lockdown)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스포츠산업의 핵심인 각국의 프로 리그 역시 감내하기 힘든 내상(內傷)을 입었다. 자생적 프로리그로 홀로서기에 성공하지 못한 한국의 리그는 그나마 후유증이 덜하다는 ‘웃픈 역설’을 위안삼아 보지만 팬데믹이 장기화되면 한국 역시 날선 부메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스포츠는 정신과 육체의 변증법적 통일체다. 결국 언텍트 사회에선 그 특수한 환경에 걸맞게 스포츠의 정신적인 측면을 성찰하고 여기에 최적화된 종목을 발굴하고 키워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저평가됐던 바둑 체스 e스포츠 등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며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상대와 대결하며 땀방울을 주고 받는 전통의 스포츠도 팬데믹 시대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안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근대 스포츠는 앞만 보고 질주했다. 스포츠에 내재한 다양한 가치를 개발하거나 그동안 잊고 살아온 아마추어리즘의 숭고한 정신을 이참에 되돌아보는 게 어떨까. 상업주의의 물결도 너무 거셌다. 물질적 편향이 결국 잉여와 과잉의 홍수를 야기했고 그 속에서 정신은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스포츠도 몸의 퍼포먼스에만 치중하면서 정신의 소중함을 잃어버렸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은 몸에 편중된 스포츠의 잃어버린 반쪽인 정신의 숭고함을 찾는 계기가 돼야 할 게다.

증식과 소유의 법칙에 매몰된 스포츠가 본연의 삶의 무대로 돌아와 진정한 내면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될 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스포츠는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되는 그런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이라는 위기의 시대가 균형잡인 스포츠의 원형질을 회복하는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바로 스포츠의 안을 들여다보고 잃어버린 반쪽을 위해 철학의 깊이를 더해야 할 때다. 잃어버린 게 있으면 찾아야 할 것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