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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제 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이기흥(66) 회장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선거는 냉정하고 때론 잔혹하다. 승자와 패자가 확연하게 갈리고 선거과정에서 생긴 앙금이 생각보다 오래 가기 때문이다. 선거의 당락에만 집착하는 범인(凡人)과 달리 내공 깊은 고수는 표에 숨어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려 힘쓴다. 그래야만 바닥 정서와 기류를 똑바로 파악해 바람직한 정책적 대안으로 묶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 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民意)와 이 회장의 연임에 숨어 있는 뜻은 무엇일까? 단순히 당락이라는 결과에 머물지 않고 이 회장 당선의 함의(含意)를 정교하게 독해해내지 못하면 한국 체육의 비전과 밝은 미래는 결코 담보할 수 없다. 현실은 미래의 창이요,미래는 다가오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기흥 회장의 연임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한국 체육사에서 연임은 이 회장이 세 번째이며,두 차례 이상 체육회장을 역임한 것도 김운용(31~33대) 김정행(38~39회) 이연택(34,36대) 유억겸(8,10대) 등에 이어 다섯 번째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 그 힘든 관문을 뚫었다는 것 자체가 당선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는 유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의 당선 모두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립각을 세우며 따낸 월계관이라는 게 주목할 대목이다. 이게 바로 이 회장 연임에 숨어 있는 가장 중요한 코드다. 그것도 정치적 스펙트럼이 정반대인 정권에서 잇따라 반기를 들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체육단체 통합을 반대하면서 따낸 승리였고,이번에도 정치적 스펙트럼이 180도 다른 문재인 정부에서 봇물처럼 터진 톱 다운 방식의 체육정책에 온몸으로 저항했다는 건 함의가 크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은 친정부적 색체가 대세였다. 정부에 저항하지 않고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했던 체육계가 왜 이리 변했을까. 이 회장의 리더십과 정치적 색깔 때문이 아니라 두 정부 모두 잘못된 체육정책을 잇따라 강행한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자존심이 상한 체육 현장은 야멸차게 등을 돌렸다. 그동안의 친정부적 색깔을 버리고 자존심을 곧추 세웠다. 입법권을 통해 체육을 압박한 정치,그리고 여기에 빌붙어 본분을 망각한 정부의 ‘신 관치체육’은 그렇게 현장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됐다. 이 회장은 사실 따지고 보면 흠결이 적지 않은 리더십의 소유자다. 그래도 그가 연임에 성공한 이유는 이번 선거를 3류 막장 드라마로 전락시킨 정치인들의 잇따른 헛발질 탓일 게다. 그나마 체육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이 회장이 체육인들로부터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는 파수꾼으로 평가받은 건 하늘이 내려준 복이 아닐까 싶다.
두 번 연속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는 건 용기있게 체육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의미다. 또한 두 정권 모두 적어도 체육정책만큼은 실패했다는 사실을 에둘러 나타내주고 있다. 체육인들은 박근혜 정부의 체육농단과 그 바통을 넘겨받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의 잇따른 체육정책 실패에 흔들리던 표심(票心)을 정했다. 심판은 정확했고 냉정했다. 권력에 취한 정치, 그리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정부에 대한 날선 심판은 체육인들의 결집을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는 이기흥 회장이 이긴 게 아니라 오만한 정치와 교활한 정부가 졌다는 표현이 맞다. 적어도 체육이 4류 정치보다 낫다는 게 입증된 선거,참으로 통쾌하기 그지 없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