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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 빛바랜 낡은 사진 한 장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었다. 거대한 역사의 숨결은 물론이거니와 개인과 가족의 애잔하고도 특별한 운명까지…. 덤덤한 흑백사진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살아 숨쉬는 인간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것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면서 토해내는 역사의 스토리텔링은 그야말로 흥미롭기 그지없다.
일본 지바현 민속박물관은 지난달 26일부터 ‘동아시아를 앞지른 몸’이라는 이색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스포츠의 현대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획전은 대만 국립역사박물관과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다음달 14일까지 열리는데 1930~4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대만의 스포츠 역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비록 일장기를 달고 뛰었지만 대만 최초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장싱쉬엔(張星賢)의 삶을 조명하는 게 기획전의 하이라이트다. 1932LA올림픽 400m 허들,1600m 계주에 각각 출전해 대만 최초의 올림피언이라는 역사를 쓴 그는 1936베를린올림픽에서도 1600m 계주에 출전해 올림픽 2회 출전의 기록을 남겼다. 이번에 공개된 장싱쉬엔의 사진 속에는 한국의 낯익은 육상 영웅도 함께 모습을 나타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1936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해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손기정.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손기정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손기정 옆에 나란히 선 훤칠한 신사 한 명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깎은 밤 같은 수려한 외모에 패션감각이 돋보이는 블래이저 재킷의 신사는 김원권이라는 짤막한 캡션 하나로 대신하기에는 너무나도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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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권, 그는 누구일까. 1930년대 후반 조선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꼽혔던 인물. 손기정에 이어 한국인 두번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후보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월드클래스 육상 스타가 바로 김원권이다. 그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 3년간 육상 남자 세단뛰기 세계랭킹 1위를 달렸다. 1941년에 작성한 그의 최고 기록 15m86cm는 1984년 박영준이 3cm를 늘리기 전까지 무려 43년간 한국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김원권은 자타가 공인한 1940도쿄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개인의 인생과 꿈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도쿄올림픽 개최가 무산됐고, 김원권이 꾼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야무진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해방 후 맞이한 1948런던올림픽에서 오랜 공백기를 뒤로 하고 올림픽 무대에 나섰지만 야속한 세월의 흐름만 절감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그의 삶은 한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아니,철저히 지워졌다.
은퇴이후 그의 사진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58도쿄아시안게임 당시 장싱쉬엔과 손기정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김원권은 1948런던올림픽 출전이후 돌연 일본으로 귀화하면서 국내에서 사실상 잊혀진 인물이 됐다. 손기정과 김원권은 남다른 사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 둘은 처남과 매부 사이였다. 손기정의 두번째 부인인 김원봉의 오빠가 바로 김원권이다. 손기정의 첫번째 부인은 조선 최고의 여자육상 스타이자 신여성이었던 강복신(1916~1944)이다. 여자 육상 200m와 멀리뛰기 조선기록 보유자였던 강복신은 평양 부호의 딸로 일본 유학 후 동덕여고 체육교사로 활동하던 1939년 손기정과 결혼했다. 일본 니카이도여자체육전문학교(현 일본여자체육대학) 유학생 출신인 그와 ‘마라톤 왕’ 손기정의 결혼은 장안의 화제였다. 아쉽게도 단란했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복신은 억척같은 신여성의 삶을 사느라 건강을 돌보지 못해 1944년 출산 후 급성간염으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손기정이 강복신과 사별 후 맞이한 두번째 부인인 김원봉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원권의 여동생이다. 6살 위의 선배인 손기정을 각별하게 따랐던 김원권은 사별한 손기정이 안타까웠는지 자신의 여동생을 손기정의 부인으로 맺어주면서 처남과 매부의 인척관계가 됐다. 김원권이 한국 역사에서 철저히 사라진 배경에는 슬픈 가족사가 숨어있다. 학병 출신인 그는 일본인 아내 사이에서 두 자녀를 뒀지만 전쟁이 끝난 뒤 한국에서 새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일본의 두 자녀가 눈에 밟혔는지 1948런던올림픽 참가이후 소리 소문없이 일본으로 귀화해 한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김원권의 여동생 김원봉은 무리한 사업을 벌이다 손기정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서 가정까지 깨졌다. 사진을 찍은 이때만해도 김원봉의 오빠 김원권과 손기정은 처남과 매부 사이로 돈독했지만 김원봉이 사망한 1970년 이후 둘의 소식도 끊어졌던 모양이다. 이 빛바랜 사진 한장 속에는 그야말로 많은 게 담겨있다. 사진 속 옅은 미소를 띤 김원권의 표정이 어쩐지 애잔하고 슬프다.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그것 또한 역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