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창
허인창. 제공 | 브랜뉴뮤직


[스포츠서울]래퍼 허인창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엠넷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두 시즌 연속 ‘화제의 인물’이었다. 지난해 ‘쇼미더머니2’에서는 직접 참가자로 나섰고, 이번 ‘쇼미더머니3’에서는 여고생 래퍼 육지담의 스승으로 주목 받았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언더그라운드 힙합씬과 가요계를 활발히 오가며 맹활약했던 ‘힙합 1세대 래퍼’ 허인창에게 ‘쇼미더머니’는 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맛보게 했다. 길거리에서 고등학생에게 놀림받은 만큼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도약할 힘을 주기도 한, 애증의 무대이다.

허인창은 지난 5월부터 ‘무한의 마이크’. ‘그러든지 말든지’ 등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며 다시 힙합팬들과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쇼미더머니2’ 방영 후 그의 이름 앞에 꼬리표처럼 붙은 ‘구식 랩’ 대신 그는 ‘요즘 랩’을 선보이며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쇼미더머니2’, ‘무한의 바다’에 익사할 뻔하다

“지난해 앨범 작업을 준비 중에 ‘쇼미더 머니 2’ 섭외 요청을 받았어요. 당연히 안 나간다고 했죠. 그러나 주변에서 꼭 우승을 노리지 않아도 기본 실력만 보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나가게 됐어요.”

그러나 허인창은 2차 예선에서 ‘프리스타일 최강자’ 지조와 맞붙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치명타였던 건 허인창이 무반주로 선보인 랩 가사 중 ‘무한의 바다’가 네티즌들에게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2차예선 연장전에서 예전 제가 활동했던 엑스틴 2집 가사가 갑자기 생각나 부르게 됐어요. 그런데 무반주로 하니까 제가 생각해도 바보같은 랩이 되고 말았어요. 부르면서도 ‘아차’ 싶었죠.”

심사위원이었던 가리온 메타가 방송에서 허인창의 랩을 ‘구식’으로 정의한 게 ‘굴레’가 됐다. 그는 온갖 패러디 영상을 양산할 정도로 네티즌의 놀림감이 됐다. 사실상 ‘무한의 바다’에 그는 거의 익사하고 말았다. “랩을 그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존심이 무너졌고, 좌절감을 겪었죠. 프로그램 이후 저를 ‘구식 랩’이라 정의 내린 메타 형과 마주친 적이 있어요. 형이 ‘인창아, 미안하다. 악마의 편집이었어’라고 웃으며 말하더라고요. 이해는 됐는데 이후 네티즌들은 제가 무슨 랩을 하든 ‘너는 옛날 랩을 해, 너는 구식이야’라고 낙인을 찍더라고요.”

허인창은 ‘쇼미더머니2’ 방영 이후 아이돌 기획사에서 랩을 가르치던 일도 끊겼다. 90년대 중반 데뷔한 이후 그에게 찾아온 가장 큰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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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창. 제공 | 브랜뉴뮤직


◇지하철에서 고등학생의 놀림, 재도약의 계기 마련해주다

허인창이 지난 7월 발표한 ‘돈트 게스(Don‘t guess)라는 곡 가사 중 “난 찾았거든 2013년 피사의 사탑이 된 내 기울어진 자존심에 대한 선문답 / 지하철 내 앞에서 왼손을 펼친 나를 비웃으며 놀려대던 한 고딩의 패기”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사다. “방송 이후 한참 분노에 찬 시기였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한 고등학생이 저를 보며 ‘무한의 바다’ 패러디 동작을 하더라고요. 그때 심각하게 ‘쟤를 때릴까’ 고민하다 그냥 픽 웃었어요. 그걸 계기로 많은 걸 내려놓게 됐어요.”

그는 “사실 래퍼들이 남의 랩을 잘 안 들어요. 누구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요. 그런데 그 일 이후 요즘 래퍼들의 음악을 듣고 연구를 하게 됐어요. 저는 나름대로 변화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예전과 똑같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최근 발표한 앨범의 달라진 점을 설명했다. ‘쇼미더머니2’의 아픔을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게 됐다는 뜻이었다.

허인창은 ‘쇼미더머니3’에서 화제의 주인공 육지담의 스승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지난해 여름 랩을 가르쳐 달라고 친구들과 함께 왔더라고요.얼마 안가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끈기있게 배우더라고요. 쇼미더머니3를 앞두고 1, 2차 예선 준비만 악착같이 시켰어요. 아직 실력이 부족한 상태이고, 여전히 배울 부분이 많지만 기본적인 재능이 뛰어난 친구에요. 목소리와 발음이 정말 좋거든요. 연습을 열심히 하면 분명 한 획을 긋는 래퍼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허인창에게 ‘쇼미더머니’란?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나 자신이 담금질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계속 음악을 하게 될 계기를 마련하게 됐어요. 한참 힘든 시기를 긍정의 힘으로 버텨냈더니 사람들이 ‘긍정의 화신’, ‘멘탈 갑’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요즘 다시 이미지도 점차 좋아지고 있어요. 랩을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새로 낸 곡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요. 저는 아직 보이지 못한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를 기대해 주세요.”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