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과 창 컷

[스포츠서울 | 고진현논설위원]윤석열과 전명규. 한 명은 대통령이 됐고, 또 한 명은 비난의 십자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했다. 천양지차(天壤之差)의 처지지만 두 사람에겐 희한한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정반대인 권력에서 모두 버림을 받았다는 점이다.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에서 내쳐졌고 그 결과 중용된 문재인 정권에서도 종국에는 버림받았다. 진영의 논리가 극심해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이 생긴 셈이다. ‘조국 사태’에서 정권과 의견을 달리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적으로 내몰린 윤석열은 검찰총장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마침내 제20대 대통령에 올랐다. 잔인한 권력의 칼에 찔러 휘청거렸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국민의 마음을 받들어 섬기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명규. 이제 그 이름은 차라리 오명(汚名)에 가깝다. 한국을 대표하는 체육인에서 부정 부패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박근혜 정부시절인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부터 시작된 전명규에 대한 무차별적인 조사와 감사는 급기야 문재인 정부시절인 2019년 8월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직 파면이라는 중징계로 이어졌고 그는 사실상 모든 걸 잃었다. 그 또한 박근혜 정부에서 버림받았고, 반대진영인 문재인 정부에서 구제되기는커녕 오히려 파면이라는 ‘확인 사살’(?)까지 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언가슴만 쓸어내렸다.

그에게 쏟아진 혐의자체가 다소 무리했다는 평가에다 상식과 원칙을 벗어난 조사과정을 놓고 볼 때 절차적 정당성에서 많은 의문이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사건의 본질이 대통령의 정치적 하명사건에서 비롯된데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진실은 애초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조사가 정치권력의 의도한 밑그림에 따라 진행된 탓에 공정성이 결여되고 조사과정 내내 합리적 이성이 작동하기 힘들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설상가상, 정치의 진영 논리가 체육계로 옮겨붙은 것도 사건의 실체를 가리게 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한국체육의 본령인 엘리트체육에 대한 공격에 전명규라는 상징적 존재는 엘리트체육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본보기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의 판결은 전명규 사건의 진실을 가늠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가 한체대를 상대로 파면 취소를 요구한 전명규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유의미한 결과도 하나 둘씩 드러났다. 전명규는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자신을 상대로 제기한 3차례의 고소에서도 모두 불기소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면취소 소송까지 합하면 4번의 고소 및 소송에서 모두 이긴 셈이다. 자신을 휘감았던 혐의를 하나 하나 벗겨가고 있는 전명규에게 우리는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전명규 사건은 여러모로 많은 걸 떠올리게 한다. 양심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의 갭이 큰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편견이 확증편향으로 몸을 불리는 악의적 여론형성 매커니즘이 어떻게 횡행하는지…. 또한 진실과 정의가 정치공학적 셈법에 굴복해 결과적으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짐짓 모골이 송연해지기까지 했다.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전명규의 손을 들어준 4차례의 고소 및 소송은 적어도 ‘체육적폐’로 굳어진 그의 이미지와는 자못 다를 수도 있다는 추측마저 들게 한다.

전명규는 15년의 국가대표 지도자 생활에서 무려 780개의 국제대회 메달을 수확했다. 그 공로로 대한민국의 5개 체육훈장 가운데 청룡장, 맹호장, 거상장, 백마장 등 최상위 4개 훈장을 모두 받았다. 물론 그에게 씌워진 적폐의 혐의가 사실로 입증되면 4개의 훈장과 780개의 메달의 가치는 부정돼도 상관없다. 전명규는 과연 뿔 달린 악마일까, 아니면 한국 체육을 빛낸 불세출의 영웅일까.

전명규와 함께 앞선 두 정권에서 모두 버림받는 희한한 경험을 공유한 윤 대통령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줬으면 하는 게 체육계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훼손된 정보에 놀아났을지도 모를 국민들도 그 답을 빨리 알고 싶다.

<논설위원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