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1S06703

[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재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비상선언’의 한재림 감독은 결국 사람이 희망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처음 ‘비상선언’ 연출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재난들이 지난 10년간 현실로 드러났다. 설상가상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져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감독 자신도 원망과 좌절 속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연대로 이겨내고, 있다며 “작은 사람들의 작은 용기가 모여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CA1S06759
◇10년 전 시나리오 받아...재난 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한 감독이 처음 ‘비상선언’을 접한 건 10년 전인 2012년이다. ‘바이러스에 의한 항공테러’라는 기본뼈대는 그때도 동일했다. 한 감독은 “비행할 수도, 착륙할 수도 없는 상황 속 갈등과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다. 재난의 속성을 드러내는 모습이라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2013년 아시아나 항공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2014년에는 전 국민을 경악케 한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201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사건은 시나리오를 다듬고 매만지는 과정 속에 녹였다.

한 감독은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알수 없는 인물이 총을 난사하고 자살한다면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당시 생존자들은 지금도 트라우마를 겪고 치료받고 있다고 한다”며 “영화도 테러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임시완이 연기한 류진석은 영화 초반부터 강력한 빌런임을 암시한다. 한 감독은 “임시완은 극 중 재난의 상징이다”라며 “재난은 예고없이 왔다가 흔적없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마치 ‘쓰나미’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의 일부 장면은 실제 사건을 연상케 한다. 배우 김소진이 연기한 믿음직스러운 기내 사무장 희진을 보면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벌어진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현장을 끝까지 지켰던 승무원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희망이 사라진듯한 영화 말미, 영상통화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교복입은 소녀들은 자연스레 세월호 사건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나누고, 비행기의 착륙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는 팬데믹 초창기의 한국사회와 흡사하다.

실제 ‘비상선언’ 역시 촬영중단과 개봉연기라는 아픔을 겪었다. 한 감독은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면서 몹시 원망스러웠다.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만들려는 얘기와 똑같은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니 경악스러웠다. 마치 모든 게 스포일러처럼 노출된 것 같고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감독은 “희망을 보았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초창기, 해외에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발코니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추운 겨울과 무더위에도 방호복을 입고 검체를 체취하는 우리 의료진의 모습을 보며 재난을 극복해내는 공동체의 연대에 존경을 표하게 됐다. 영화 속에서도 이 사회를 지탱해내가는, 성실히 자기 일을 해 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감독

◇세번째 호흡 맞춘 송강호...우리나라 최고의 배우구나 느껴

배우 송강호와는 ‘우아한 세계’(2007), ‘관상’(2013)에 이어 벌써 세 번째 호흡이다. 실상 ‘비상선언’ 역시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 송강호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예 영화 제작을 포기하려 할 정도였다.

한 감독은 “송강호 선배는 매 테이크마다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주고 매 번 다른 사람이 된다”며 “특히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신에서 보여준 절제하는 모습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라고 느낄 정도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영화는 전도연, 이병헌, 김남길, 박해준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그러나 각 배우들이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최대한 절제하며 합을 맞추는 연기로 완성도를 높였다.

한 감독은 “성실한 소시민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이하드’처럼 영웅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면 관객이 더 좋아할테지만 이 영화는 사람들의 용기를 그린 작품인 만큼 최대한 과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했다”고 연출포인트를 밝혔다.

영화 초반부를 이끌어 가는 임시완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한 감독은 “기내에서 재혁의 딸과 옥신각신하는 장면은 리허설 때 나온 장면이다. 그 미소, 표정이 너무 좋아 결국 그 컷을 쓰게 됐다”며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표현해달라고 당부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