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SeoulWC_Final-1289
차명종(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끝난 세계캐롬연맹(UMB) 서울3쿠션월드컵 결승전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와 경기에서 큐를 잡고 공을 주시하고 있다. 제공 | 파이브앤식스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아빠가 세계 2위 했다고 아들도 자존감 높아졌죠.”

최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막을 내린 세계캐롬연맹(UMB) 서울3쿠션월드컵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한 차명종(44·인천시체육회)은 그야말로 늦깎이 스타다. 대학에서 유기합성을 전공한 차명종은 굴지의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만 36세이던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큐를 잡았다.

차명종은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이전부터 당구를 잘 치는 편이었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도 종종 했는데, 본업으로 나선 건 우연히 강동궁 선수를 만나면서”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안산에 있었는데, 강동궁 선수가 우연히 (지역 내 당구장에) 게임 매니저로 찾은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안산 아마추어 중 손꼽힐 정도로 당구를 잘 친다는 소리를 들을 때다. 그런데 강동궁과 쳐보니 전혀 다른 세계에 있더라. 10배 이상 레벨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

‘강동궁 충격파’는 그에게 도전 정신을 입혔다. 차명종은 “강동궁 같은 선수가 한번 돼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 역시 내게 ‘충분히 자질이 있다’고 해줬다. 그 한마디가 나를 이 길로 인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전에 전문선수의 길을 갈 뻔한 기회도 있었단다. 지난 2009년 경기도 신인선발전에서 준우승한 뒤 대한당구연맹(KBF) 선수 등록을 하면서다. 다만 당시만 해도 당구 선수로 먹고사는 게 쉽지 않았다. 연구원과 선수의 길을 병행할 생각도 했지만, 대회가 주로 주중에 열려 불가능했다. 당구 선수의 꿈을 다시 연결해준 강동궁은 그에게 은인과 다름이 없다.

차명종
제공 | 파이브앤식스

차명종 산체스
제공 | 파이브앤식스

배움의 자세로 큐를 잡은 차명종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다. 최근 들어서는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천년의 빛 영광전국당구대회’에서 우승하더니 올해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UMB 월드컵에서는 처음으로 예선을 통과해 32강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달 4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예선 통과는 물론 16강에서 김행직, 8강에서 세미 세이기너(튀르키예) 등 톱랭커를 연달아 무너뜨렸다. 4강에서는 프랑스의 마르쉘 그웬달에게 11-28로 뒤지다가 후반 하이런 15점을 몰아치며 50-48, 집념의 대역전극을 펼치기도 했다. 비록 결승에서 ‘4대 천왕’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에게 19-50으로 졌지만 차명종의 반란은 대회 최고 볼거리였다.

차명종은 “토너먼트 때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공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터키에서 배우 생활을 겸하는 세이기너와 경기는 상대 성향을 잘 파고든 게 적중했단다. 그는 “세이기너가 김행직에게 약한 편이다. 왜 그런지 분석해보니 상대 무표정, 무심함에 반응하더라. (상대가) 득점해도, 실패해도 흔들림 없이 하면 스스로 무너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부분을 공략한 게 주효했다”며 설명했다.

산체스와는 연이 있다. 그는 지난해 월드 그랑프리 조별리그에서 산체스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는 “산체스가 (내게 진 뒤) 평가전이라도 하자고 했다. 내가 ‘우리는 대회에서 만나야지, 이벤트는 안 된다’고 농담했다. 이번에 결승에서 만났는데 정말 독을 품고 나를 박살내더라”며 “산체스에게 설욕하겠다고 했더니 ‘우리는 이제 일대일’이라며 결승 한 번 더 하자더라”며 웃었다.

전문 선수의 길을 지지해준 아내는 물론 열 살, 여덟 살짜리 두 아들도 ‘아빠’의 선전에 감격했다. 차명종은 “아이들이 수원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데 주변에서 ‘아버지가 세계 2위 했다며?’라는 얘기를 들으니 자존감이 올라간 것 같더라. 당구에도 관심이 많은 데 (선수의 길을 원하면) 얼마든지 지원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