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타격 마친 나지완
KIA 나지완이 7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전에서 은퇴식을 겸한 은퇴경기에서 8회말 대타로 출전해 아웃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관중에게 답례하고 있다. 광주 | 연합뉴스

[스포츠서울 | 광주=장강훈기자] 아주 작은 애벌레에서 상처 많은 번데기로, 힘겹던 겨울을 지나 봄바람과 함께 날개를 활짝 펴고 꿈을 찾아 날아가는 나비. YB밴드의 히트곡이자 ‘나비’ 별칭을 가진 KIA 나지완(37)의 등장곡 ‘나는 나비’ 가사 내용이다.

KIA가 나지완이 유니폼을 벗은 날,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7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와 홈 경기에서 유니폼 넘버 29번을 함께 단 동료 덕분에 ‘나비’도 선수로서 마지막 타석에 들어설 기회를 얻었다. 나지완은 KIA가 5위 확정 9부 능선을 돌파한 8회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섰다. KT 다섯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전유수를 상대한 나지완은 5구 만에 3루수 파울플라이로 돌아섰다. 1만 5000여 관중은 나지완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립박수로 떠나는 스타를 배웅했다. KT 선수들은 나지완의 마지막 타구를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예우했다.

최형우, 경기 후반 투런홈런
KIA 최형우가 7일 광주 KT전에서 7회말 쐐기 2점 홈런을 뽑아낸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광주 | 연합뉴스

관중들이 8회말 시작과 함께 나지완의 이름을 연호할 수 있었던 건 8-1로 사실상 승기를 잡은 덕분이다. 애초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지만, 팀 순위를 확정하지 못해 벤치에서 은퇴경기를 시작했다. 등에 새긴 29번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동료들은 최선을 다해 점수 차를 벌렸다.

0-1로 뒤진 4회말 김선빈의 희생플라이와 황대인의 2점 홈런으로 3점을 뽑아 역전한 KIA는 8회까지 매이닝 득점해 승기를 잡았다. 팀 내에서 나지완 보다 유일한 형인 최형우는 7회말 KT 김민의 시속 154㎞짜리 속구를 걷어 올려 광주구장을 반으로 가르는 쐐기 2점 홈런으로 나지완의 은퇴를 축하했다. 대수비로 투입돼 8회말 첫 타석을 소화한 김호령도 호쾌한 3점 홈런으로 ‘함평 동지’이자 선배가 떠나는 길에 축포를 쏘아올렸다.

기뻐하는 놀린
KIA 외국인 투수 션 놀린이 7일 광주 KT전에서 7이닝 1실점 역투한 뒤 관중 환호를 유도하고 있다. 광주 | 연합뉴스

선발 숀 놀린도 7회까지 삼진 9개를 곁들이는 괴력투구로 갈 길 바쁜 KT 타선을 잠재웠다. 11-1 대승. 이날 경기가 오롯이 ‘나지완 은퇴경기’이기를 바라는 선수단의 마음이 하나로 뭉친 결과였다. 덕분에 나지완은 9회초 좌익수로 출전해 승리의 순간을 함께했다.

KIA 김종국 감독은 경기전 “무조건 이겨야 한다. 5위 확정뿐만 아니라 (나)지완이에게 ‘선발로 출전할 준비를 하라’고 얘기했는데, 한 타석이라도 출전하려면 큰 점수차로 리드해야 한다”고 필승 의지를 드러냈다. 프로 15시즌 동안 두 차례 우승을 견인한데다, 암흑기 중심타선을 홀로 지킨 나지완의 노고를 승리로 보답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도 포함한 의지다.

마지막 타석에 들어서는 나지완
KIA 나지완이 7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전에서 현역 마지막 타석을 준비하고 있다. 광주 | 연합뉴스

나지완은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가 2군으로 내려간 뒤 한 번은 기회가 올 것으로 믿고 열심히 훈련했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후배들이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팀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전반기 막판 은퇴를 결심했다. 무엇보다 늘 밝게 웃던 아내가 내 눈치를 보는 게 너무 싫었다. 결심하고 나니 후련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장에 오면 관중석이 늘 붉은 물결로 가득찼다. 팬 여러분이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신 덕분에 15년 동안 ‘타이거즈 나지완’으로 행복하게 야구했다. 어떤 형태로든 타이거즈맨으로 남아 팬 여러분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꼭 타이거즈의 12번째 우승을 이끌 것으로 믿는다. 나 역시 열심히 응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구장
광주-KIA 챔피언스필드 외벽에 걸린 나지완 은퇴 현수막. 광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2018년 이후 4년 만에 가을잔치 참가를 확정한 KIA 선수단과 팬들은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과 함성으로 떠나는 나지완을 배웅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노래하며 춤추는 아름다운 나비’ 그 자체였다. 이보다 더 축제 같은 은퇴식은 없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