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5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지난 회에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리사이틀을 중단했던 가수 김추자 사건(?)을 소개한 바 있다. 목소리는 가수의 생명인데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정도로 목을 혹사했다는 건 큰 문제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선데이서울’ 240호(1973년 5월 20일)는 가수들의 공연 실태를 살펴보는 기획 기사를 실었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목소리가 나온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당시 인기 가수 대부분은 잦은 공연으로 목을 무리하게 쓰고 있었다.

인기 앞에서, 돈 앞에서 가수의 목상태는 고려 대상도 되지 않는 듯했다. 물론 이는 정상급 인기 가수 몇몇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정작 노래를 부를 기회도, 설 무대도 없는 신인이나 무명 가수와는 다른 세계이기도 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단독 리사이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가수가 많지도 않았거니와 단독 리사이틀 자체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당시 리사이틀을 연다고 하면 닷새 정도 기간을 잡았는데 하루 4회 공연에 매회 20곡 정도를 불렀다. 결국 하루에 80곡이니 닷새 동안 얼추 400곡을 부른다는 게 단순 계산이다.

공연 중 팬들의 열광적인 호응이 이어지면 몇 곡쯤은 ‘앙코르 곡’이 추가되기도 할 것이다. 당연히 짧은 기간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 중노동(?)이었다. 당시 인기가수들의 고백을 들어보자.

가장 활동이 많았던 남진은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해 늘 잠이 모자란다고 했다. 가수 활동은 물론이고 영화 촬영 일정까지 빡빡했으니 더 바빴을 것이다. 그는 리사이틀이 끝나면 녹초가 되어 피로를 풀어주는 주사를 맞는다고 했다. 서울 리사이틀이 끝나고는 10~15일 정도 푹 쉰 후에 지방공연에 나선다고 했다. 그런데도 장거리 공연은 목이 붓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나훈아도 리사이틀이 끝나면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주사를 맞는다고 했다. 그만큼 무리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남진과 나훈아는 당시 20대로 한창 때였다. 그런데도 공연 스케줄 소화가 힘들었다니 여자 가수나 연로한 가수들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춘화는 주치의를 두고 링거를 맞아가며 버틴다고 했다. 그 무렵, 한번은 경주와 여수 공연을 마치고는 곧바로 입원했다고 한다. 입원은 곧 휴식이었던 셈. 당시 하춘화는 ‘선데이서울’에 관련 기사가 거의 매주 실릴 정도로 핫한 가수였다.

정훈희는 장거리 지방공연이 가장 힘들어 겨울철이면 감기와 몸살로 며칠을 쉬어야 한다고 했고, 이수미 역시 지방공연을 다녀오면 녹초가 된다고 했다. 신인이었던 최안순은 평소 튼튼하다고 자부했던 위장이 가수가 되고부터 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바람에 이상이 생겼다고 했다.

미8군 무대와 밤무대 등에서 활동하는 김상희는 하루 30여 곡을 부르는데 크게 힘들지 않지만, 리사이틀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반면 패티김은 미8군 무대와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는데 무리하게 잡지 않아 별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미자 역시 밤무대와 TV, 라디오 등에서 하루 30곡 정도를 부르지만, 무리 없이 소화한다고 했다. 결국 무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리사이틀과 지방공연, 그런 강행군과 무리가 결국은 가수의 목에서 노래가 나오지 않는 최악의 사태를 빚었던 것. 저마다 가진 목소리에는 인품이 묻어 있고 세월의 연륜도 담겨 있다. 그 목소리는 가수에게 생명이다. 오래오래 잘 간직해야 할 목소리를 혹사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목숨을 단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50년 전, 몇몇 인기가수들이 털어놓은 뒷이야기를 보면 지난 반세기에 달라진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가수의 공연무대도 상전벽해라 할 만큼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교통편도 KTX나 비행기, 대형 고급버스 등으로 다양하고 편해지고 빨라졌다. 또 이동하는 시간에 잠도 잘 수 있는 대형밴을 가진 가수도 많다.

몇 날 며칠 빽빽하게 진행했던 수십 차례 공연은 수천명에서 수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대형 공연장이 늘어나면서 많아도 하루 2회 공연으로도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출연 준비와 일정, 그리고 건강을 관리하는 매니저도 있다.

몸이 건강해야 건강한 목소리로 건강한 노래를 들려 줄 수 있다. 50년 전 목소리 혹사로 인한 공연 중단과 같은 불행한 일은 이제 없을 것이고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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