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이 엄마는 모질다. 성장기 아들이 밥 한 공기를 비울라 치면 “배부르면 공부할 때 졸려”라고 눈치를 줬다.

행여 공부하는 아들이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며 딴 짓을 할까봐 사춘기 아들 방 문짝을 떼버렸다. 그렇게 남편도 없이 독하게 키운 자식은 검사가 됐고, 호적을 파서 나가겠다고 선언한 뒤 7살 어린아이로 돌아왔다.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미소 지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겠구나.”

지난 8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가혹할 만큼 모질고 독하게 아들을 키운 엄마 영순을 연기한 라미란은 “자식이 어디 아프기만 해도 내 탓처럼 여기는 게 세상 엄마들의 마음”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다들 영순과 같은 나쁜 엄마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원래 배세영 작가님은 이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처음 8부작까지 나온 대본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으며 오열했죠. 분명 진부하고 올드한 스토리인데 빠져들었어요. ‘이건 내가 해야겠다’ 싶어 바로 출연하겠다 답을 드린 뒤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어요. 나는 진지한데, 사람들이 웃을까 걱정이 들었죠.”

tvN ‘응답하라 1988’(2015)의 치타여사나 그 자신에게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정직한 후보’(2020)시리즈처럼 TV와 스크린에서 주로 코믹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라미란이다.

때문에 영순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영순을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하기보다 그냥 영순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극 중 영순의 18번은 가수 윤항기가 작사·작곡한 ‘나는 행복합니다’다. 만삭의 몸으로 남편을 잃고, 삶의 전부였던 검사 아들은 어린아이가 됐고, 그 자신조차 말기암 판정을 받은 영순의 삶을 비춰보면 아이러니한 곡 선정이다. 라미란은 “그럼에도 영순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매 순간 영순의 행복이 느껴졌어요. 강호(이도현 분)가 검사가 됐을 때, 입양동의서를 내밀 때도 ‘네가 행복하다면…’이라는 마음으로 도장을 찍어줬죠. 사고를 당한 강호가 다시 깨어났을 때, 밥을 먹기 위해 손을 움직였을 때,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보다 몇 배는 큰 행복을 느꼈을 것 같아요. 아픔이 클수록 보상이 크니까요.”

그렇게 촬영했던 작품이라 TV로 시청할 때마다 라미란 자신도 울컥하곤 했다. 라미란은 “아들 강호가 사고 뒤 처음 밥을 먹고 입을 뗐을 때 첫 마디는 나도 소름 돋았다”라고 말했다.

아들 역 이도현에 대해 “앞으로 한국 방송계를 씹어먹을 배우”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모든 배우, 하다못해 돼지까지 베테랑 연기를 펼친 현장이었지만 이도현은 농담을 하다가도 바로 감정을 조절하고, 연기의 폭도 넓은 배우라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라고 칭찬했다.

늘 밝고 쾌활해 보이는 라미란도 젊은 시절에는 ‘나쁜 엄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무명시절, 아이 젖을 먹이다 “오늘 시간 되냐?”는 캐스팅 디렉터의 전화를 받은 뒤 돌쟁이 아이를 들쳐 업고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오디션을 본 사연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당시 엄마 등에 업혀 오디션장을 찾았던 그의 아들도 어느덧 스무살이다.

라미란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가족은 내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 아들도 ‘주변에서 ‘나쁜 엄마’가 재미있다고 하는데 봐야 하나?’라는 반응이다. 평소 아들에게 사랑을 구걸하긴 하는데 바빠서 자주 못 본다. 다행히 아들은 내가 ‘좋은 엄마’라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나쁜 엄마’ 속 열연에 힘입어 라미란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차세대 ‘국민엄마’로 꼽히고 있다. 과거에는 김혜자, 고두심, 김해숙, 나문희 등이 주로 이름을 올리곤 했다. 하지만 라미란은 ‘국민엄마’라는 수식어에는 손사래를 쳤다.

“아직 ‘응답하라 1988’의 ‘치타여사’ 이미지도 떼지 못했어요. 다른 작품을 통해 이미지 변신도 해야 하니 ‘국민엄마’ 수식어는 사양할게요.”

실제로 라미란은 이날 머리 일부분을 노랗게 염색한 채 나타났다. 그는 인터뷰 전 “라스파(라미란+에스파의 합성어)입니다”라고 인사해 웃음을 자아냈다. 일본 인기소설 원작인 새 드라마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촬영을 위한 변신이다.

티빙 오리지널 ‘잔혹한 인턴’과 영화 ‘시민 덕희’(박영주 감독), ‘하이파이브’(강형철 감독) 촬영도 마친 상태다.

“요즘 중년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이 많아졌어요. 저는 역할이 작더라도 재밌고 의미있는 작품이면 도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아마 ‘부부의 세계’같은 작품은 안 들어올 것 같네요.(웃음) 무명 시절에는 어려워서 세금 환급받을 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국가에서 지원을 못받아도 세금내는 사람이 됐으니 저도 이만하면 성공했나 싶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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