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지난달 30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2023 재팬오픈 취재를 갔다가, 배드민턴이 1820년께 인도에서 성행하던 푸나(Poona)라는 게임에서 유래했다는걸 알게 됐다.
당시 인도 주둔 영국 육군사관들이 이 게임을 배운 뒤 자국으로 가져가 배드민턴으로 발전시켰다는 게 정설이라고 한다. 배드민턴(Badminton)은 영국 특정지역 이름이다.
셔틀콕을 쳐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21점 내기 한 게임만 해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버릴 정도로 정말 힘든 라켓스포츠라는 점을. 초인적인 체력과 고도의 순발력이 요구된다.
개인적으로는 남자복식 간판이었던 이용대의 경기에 매료돼 박진감 넘치는 랠리를 펼치는 복식 경기를 좋아했으나, 셔틀콕 천재 안세영(21·삼성생명)이 등장하면서 지루하게만 여겨지던 단식 경기에도 빠지기 시작했다.
실제 최근 코리아오픈과 재팬오픈 때 안세영의 게임을 코트 바로 뒤에서 직관할 기회를 가지면서, 순간순간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고도로 훈련된 빠른 스텝을 이용해 코트의 전후좌우를 누비며, 상대의 폭발적인 스매시나 헤어핀 등을 받아내는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스텝에 관한 한 안세영은 현역 여자 선수 중 최고로 꼽힌다. 찰나의 순간인데도, 순간 손목 힘을 조절해 상대로부터 반격당하지 않게 셔틀콕을 이곳저곳으로 넘겨주는 그의 기술은 실로 놀라웠다.
실제 안세영과 재팬오픈 4강전과 결승에 맞붙은 세계 4위 타이쯔잉(29·대만)과 5위 허빙자오(26·중국)는 초반에는 대등한 게임을 펼쳤다. 그러나 이들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안세영의 코너 코너로 셔틀콕을 돌리는 기술에 힘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안세영과 그의 경쟁자인 중국의 천위페이(25),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26). 이들이 펼치는 이른바 ‘한·중·일 셔틀콕 삼국지’는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안세영은 광주체육중 3년 때부터 천부적 자질로 한국 배드민턴의 미래로 주목받았고, 2018년 2월15일 처음 랭킹포인트를 획득해 1335위로 출발한 이후 5년5개월 만에 1위에 등극했다.
그의 천적으로 불리던 천위페위(세계 3위)를 극복해 이제 한 뼘쯤 앞서 나가는 맞수가 됐고, 최근 부진에 빠진 야마구치한테는 우위를 보인다.
9월로 다가온 제19회 항저우아시안게임(9.23~10.8)과 2024 파리올림픽(7.26~8.11)에서 이들 3인 중 누가 금메달을 따낼 수 있을지 아직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안세영이 최근 3인중 절정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세영은 지난 1899년 시작돼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전영오픈에서 올해 처음 우승하는 등 시즌 7차례 정상에 올랐다. 아직 20대 초반이라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으나, 세계랭킹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비상했다.
“세계랭킹 1위가 된 건 너무 행복하고 뿌듯한데, 한편으로는 지켜야한다는 생각도 들어 걱정되는 것도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하다.”
지난달 31일 도쿄에서 금의환향해 언론 인터뷰에서 안세영이 한 말이다. 그는 “8월 덴마크 세계선수권대회를 잘 준비해 어렵게 등극한 랭킹 1위를 지킬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도 밝혔다.
한국 배드민턴은,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이용대-이효정의 혼합복식 금메달 이후로, 2020 도쿄올림픽까지 한개의 금메달을 따내지 못하고 부진했다.
2016 리우올림픽 때 여자복식에서 신승찬-정경은이 동메달을 따내며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는 노메달 치욕도 당했다. 2020 도쿄올림픽 때 안세영은 여자단식 8강전에서 천위페이에 져 올림픽 첫 무대에서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제 안세영은 그런 한국 배드민턴의 숙원을 풀어줄 최고의 기대주로 등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위페이와 야마구치와의 3파전에서 최종 승자가 돼야 한다.
안세영은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누구보다도 안방 이점을 가지고 있는 천위페이를 넘어야 한다. 천위페이의 고향은 공교롭게도 항저우다. 홈팬들의 극성스러운 응원과 텃세를 벌써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kkm100@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