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기자] 1만5206일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1982년3월27일, 화창한 토요일 오후였다. TV를 틀어보니 야구 중계를 한다. 프로야구 개막전이라는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소녀에게 프로야구라는 단어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팀명은 낯설었지만, 익숙한 선수도 더러 보였다. 고교, 대학야구 등을 시청한 덕분(?)에 아마추어 야구 스타 플레이어는 들어본 것 같다.
긴 호흡으로 치르는 야구는 즐길거리가 많지 않던 70~80년대 어린이에게는 아주 좋은 볼거리여서 자연스럽게 야구팬이 됐다.
개막전 실황 중계를 보면서 “이 경기에 이기는 팀을 응원해야지”라고 다짐했는데,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은 끝내기 만루홈런이 터졌다.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그라운드를 뛰는 MBC 청룡 이종도를 바라보며 소녀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야구팀 팬이 됐다. 성인이 될 무렵 MBC는 LG로 팀명을 바꾸더니 4년 주기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특히 1994년 신인 삼총사(류지현 서용빈 김재현)를 앞세운 ‘신바람 야구’로 리그를 지배했을 때는 “LG팬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승,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드라마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김은희(51) 작가는 “29년이나 우승을 못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부정탈까봐 설레발도 못치겠다”며 발을 동동 굴렸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 그는 “야구계에서 유명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가치가 너무 좋다. 선수들은 슬럼프에 빠져도 열심히 해야만 한다더라. 힘들지만, 지금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얘기”라고 했다.
야구에서 인생을 배우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야구를 배신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9월1일 잠실 한화전에서 시구자로 잠실구장 마운드에 선 그는 보란듯이 스트라이크를 꽂아넣고는 “LG의 우승 한을 풀기 위해 (드라마 상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 올해는 이 한을 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찐팬 인증’까지 했다.
시구 직전까지도 “직관 승률이 안좋다”며 잔뜩 긴장했던 김 작가는 이날 LG가 대승하는 것을 보며 초등학생 소녀처럼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을 떠올리며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까지 경거망동을 삼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입덕’한 뒤에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이유가 있을까. 김 작가는 “신바람 신인 트리오처럼, LG에는 꾸준히 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올해 ‘캡틴’으로 맹활약한 오지환 선수가 LG 팜 성장 캐릭터의 대표격”이라고 말했다. 팀과 선수와 팬이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매력이 팀 트윈스에 있다는 얘기다.
그는 “시구해보니 손끝, 엉덩이 등이 엄청 아프더라. 쉬운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오지환 선수와 악수했는데 손바닥에 굳은살이 깊게 박힌 게 느껴져 감동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훈련을 소화한 야구 선수들의 노력이 엿보였다”고 강조했다.
이 노력이 우승이라는 선물로 돌아오면, 그 어떤 환희와도 바꿀 수 없다. 강산이 세 번 변할 때까지 선수들의 땀과 열정을 지지한 김 작가 또한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13일 잠실구장을 찾았다. 조용히 관중석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두손을 모았다. 2만7000여 팬의 염원에 김 작가도 혼을 더했다. 케이시 켈리의 역투와 박해민의 맹활약에 박수와 함성을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터진 폭죽. 29년 만에 잠실벌에서 환희에 빠진 순간, 김 작가도 함께 ‘승리의 찬가’를 외쳤다. “여한이 없다. 다 이뤘다”는 말을 무한반복하는 김 작가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