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약 1년 전이었다. 양의지(36)를 두고 총계약 규모 100억원이 훌쩍 넘는 머니게임이 펼쳐졌다. 양의지 사수에 사활을 건 NC부터 양의지 복귀를 목표로 삼은 두산, 그리고 최하위 탈출을 노리는 한화까지 세 팀이 양의지를 바라보며 과감한 레이스를 벌였다.
승자는 두산이었다. 두산은 양의지와 최대 6년 152억원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KBO리그 역사상 최대 계약 규모가 작년 11월 두산과 양의지를 통해 경신됐다. 2018년 겨울 NC와 4년 125억원에 첫 번째 FA 계약을 맺었던 양의지는 2028년까지 10년 동안 최대 277억원을 받을 수 있다.
올겨울은 다르다. 양의지처럼 S급 선수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영입 경쟁이 펼쳐지지 않는다. 시장에 100억원대 계약을 맺을 만한 선수는 없으나 이른바 중견급 FA는 많다. 올해 홈런 부문 5위에 이름을 올린 양석환을 비롯해 전준우, 안치홍, 임찬규, 김재윤, 함덕주, 홍건희 등 팀 전력을 상승시킬 선수들이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이들 중 목적지가 결정된 FA는 전준우, 안치홍, 김재윤 뿐이다. 전준우는 롯데에 잔류했고, 안치홍은 한화, 김재윤은 삼성으로 이적했다. 셋 다 시장 개장 초기에 계약을 체결하며 스토브리그가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는데 이후에는 움직임이 없다. 지난 22일 2차 드래프트 이후 다시 활발해진다는 예상이 많았으나 2차 드래프트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FA 계약은 나오지 않는다.
원인은 뚜렷하다. 시장가를 만드는 핵심 요소인 ‘경쟁’이 없다. 전준우와 안치홍의 경우 이전 소속팀과 타 팀의 경쟁이 있었고 빠르게 행선지가 결정됐다. 김재윤은 KT가 삼성이 제시한 금액을 쫓지 않으면서 계약이 완료됐다. 보통 구단은 시장이 열리자마자 목표로 삼은 FA와 접촉한다. 빠르게 영입 의사를 전달하고 원소속팀과 가격 경쟁을 통해 계약이 성사된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이런 사례는 전준우, 안치홍, 김재윤 셋뿐이다.
결과적으로 샐러리캡이 각 구단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만들었다. 사치세 상한선인 연봉 상위 40인 기준 114억2638만원 초과에 부담을 느낀다. 실제로 2연패를 노리는 LG를 제외하고는 사치세를 감수할 뜻을 보인 구단이 없다. 즉 우승이라는 명분이 없다면 샐러리캡 기준선 초과는 쉽지 않다.
이러한 흐름은 이듬해에도 유지될 수 있다. 2024시즌 후 고우석, 고영표, 최원태, 엄상백 등 수준급 투수들이 시장에 나오는데 이들 모두가 영입 경쟁 대상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미 10구단 중 7구단 가량이 샐러리캡 기준선과 마주하고 있어 최대어 영입이 어렵다. 장기 계약으로 연평균 금액을 낮추거나, 특정해 몰아주기식 계약 구조를 구성하지 않으면 사치세를 피할 수 없다.
고우석은 현재 포스팅을 통한 미국 진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고우석이 이번 겨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일 년 후 KBO리그 FA는 되지 못한다. 이 경우 고영표가 2025 FA 시장 S급 최대어가 될 것이다. 토종 에이스를 향해 많은 팀이 군침을 흘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양의지 같은 경쟁 구도는 없을 것이다. 샐러리캡 여유가 있는 원소속팀 KT, 혹은 키움 정도만 고영표의 가치를 감당할 수 있다. KT와 키움의 경쟁이 없다면 가치보다 못한 계약 규모가 나올지도 모른다. 샐러리캡이 없었을 때 흔했던 무모한 영입 경쟁이 샐러리캡으로 인해 줄어드는 추세다. S급 초대형 계약도 덩달아 준다. 샐러리캡 기준선 114억2638만원이 유지되는 2025시즌까지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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