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기자] 국내 주류업계의 가격 인상이 연내 전망됐지만, 선제적 인하 행렬이 벌어지고 있다. 주류업계는 지난달 올렸던 소주 출고가격을 다시 인하중이다.

오비맥주는 지난 10월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의 공장 출고가격을 평균 6.9% 인상했고 이를 기준으로 타 주류업체 소주 제품 인상도 예고됐다. 실제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9일 소주 출고가(참이슬 360㎖ 기준)를 기존 1166.6원에서 1247.7원으로 1년 9개월 만에 인상했다. 이는 식당 등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주류사들이 일제히 출고가를 인상함에 따라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 맥주 가격 또한 인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었다. 현재 식당 판매용 소주,맥주의 가격은 5000원대지만, 출고가 인상여파로 6000원대가 될거란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국민 시선을 의식한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물가 잡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지난 14일 국세청은 주세 기준판매비율심의회를 열고 국산 소주의 기준판매 비율을 22.0%로 결정했다.

주류업계는 각종 원부자재 가격상승과 국제유가 급등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어필했으나, 국세청의 주세 기준판매 비율 제도 도입으로 비자발적 인하를 선택했다. 세금이 조정되면서 가격 인하 압박에 직면한 것.

앞서 기준판매 비율 제도는 수입 주류에 비해 국산 주류에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종가세 과세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국산 주류는 제조원가에 ‘판매 비용과 이윤’이 포함된 반출가격에 세금이 매겨졌으나 수입 주류는 ‘판매 비용과 이윤’이 붙기 전인 수입 신고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 역차별 논란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국산 증류주에 기준판매비율만큼 빼고 나머지에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국세청은 국산 소주의 과세표준이 22.0% 할인되면 공장 출고가는 약 10% 정도 싸질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이날 하이트진로는 소주 제품인 ‘참이슬’과 ‘진로’의 출고가격을 오는 22일 출고분부터 선제적으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애초 하이트진로는 내년 1월 1일부터 이들 소주의 출고가를 10.6% 낮추기로 했지만,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에 동참하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인하 시기를 앞당겼다고 전했다.

롯데칠성도 ‘처음처럼’과 ‘새로’ 등 소주 제품의 출고가를 이전보다 각각 4.5%, 2.7%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 총선을 위한 ‘큰 그림’…기업 압박해 민심 달래기 한창

서민물가 잡기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부 여당의 득표용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서민들이 많이 소비하는 소주, 맥주 물가부터 잡아야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실제 업계에선 총선을 언급하며 가격 인상을 자제하거나, 인상 타이밍을 늦춰달라는 요청이 많다며 연내 가격 인상을 위해 정부와 조율 중임을 밝혔다.

결국 롯데칠성, 하이트진로 등 대형 주류업체를 필두로 금복주 ‘참소주’, 한라산 ‘한라산 순한’, 보해양주 ‘잎새주’ 등 줄줄이 인하 중이다.

이에 한 소비자는 “이미 식당에서는 인상된 가격이 반영되어 판매되고 있는데 출고가가 낮아지면 뭐하나. 시중에 판매되는 술 가격을 조정해야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총선 전 가격 인하 압박은 주류뿐 아니다. 부채가 200조에 달해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전력공사도 내년 1분기 에너지 공공요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한전의 존립을 위해서는 적자 해소가 시급하지만 사실상 정부에 전기·가스의 소매요금 결정권이 있는 이상 요금인상은 강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 난방비와 직결된 가스요금도 당분간 인상이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방문규 산업부 장관은 지난 12일 전기·가스요금 인상 여부와 관련해 “에너지 요금을 당분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둔 민심 달래기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총선 이후 인상은 정부와 여당이 매번 관행으로 하던 것이다. 이 또한 득표 전략이 아니겠나”며 “여론 악화를 의식해 역마진 구조를 해결할 생각은 안하고 기업들만 압박하는 다소 무리한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결국 총선 후엔 물가,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대거 인상될 전망이다”고 경고했다. 자칫 내년 총선이후 소비물가의 경착륙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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