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돌이켜 보면 대본은 달라진 점이 없어요. 다만 제가 변했을 뿐이죠.”

배우 송중기는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에 출연하게 된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조해진 작가의 원작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각색한 영화 ‘로기완’은 유럽의 낯선 도시 벨기에에 던져진 탈북 청년 로기완과 교포 최마리(최성은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청년은 어머니를 여의고 결핍된 삶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에 차츰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대본을 집필하고 영화를 연출한 김희진 감독은 7년 전 송중기에게 로기완 역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송중기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커리어 면에서도 승승장구했다. tvN ‘빈센조’(2021)에 이어 JTBC ‘재벌집 막내아들’(2022)까지 연이어 큰 성공을 거뒀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지난해 제 51회 국제 에미상(International Emmy Awards) TV 영화·미니시리즈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은 송중기의 마음에 ‘결핍’을 그렸던 이 영화의 대본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마도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할 때쯤 다시 대본을 받았어요. 7년 전 한 번 거절했던 작품이라 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죠. 마리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변경됐지만 전체적인 뼈대는 7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이 대본에 끌리더라고요. 달라진 건 제 자신이었어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만 해도 감독에게 “엄마 시신 판 돈으로 벨기에에 온 로기완이 어떻게 사랑놀음을 할 수 있냐”고 냉철한 돌직구를 날렸던 송중기다. 영화를 본 관객들도 대부분 이 지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영화 출연을 결정하던 시기, 송중기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사랑, 친구의 사랑, 연인의 사랑 등 사람과 부대끼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며 “다만 감독에게 요청해 ‘내가 행복할 자격이 있는 놈이야’라는 대사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가정이 주는 행복을 만끽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2008년 영화 ‘쌍화점’으로 데뷔, 어느덧 16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요즘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이 아닌 제작자 마인드로 촬영에 임한다. 최근 배우들의 화두인 ‘돈값’에 대한 철학도 명확했다.

“제 개똥철학인데요, 요즘 시대가 유명한 사람이 나온다고 콘텐츠를 보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송중기 나오니 보자’ 이러진 않죠. 저는 주연배우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이 없으면 주인공하면 안되죠. 작품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되고요. 김고은 씨가 ‘돈값’이라고 했는데 저는 ‘몸값’한다고 말하곤 해요. 괜히 제작자들이 주연배우에게 출연료를 많이 지급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극 초반 벨기에에 내동댕이쳐진 로기완의 생존을 필사적으로 연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추운 겨울 날 직접 강에 뛰어드는 연기를 몸소 해내기도 했다. 송중기는 “당시 촬영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아서 빨리 들어가 촬영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역시 배우보다 제작자의 관점에 가깝다.

실제로 송중기는 제작자로서 꿈이 있다. 그의 소속사인 하이지음스튜디오가 매니지먼트와 제작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송중기는 “평소 소속사에서 제작 회의를 하면 참여하면서 배우로서 의견을 내기도 한다”며 “국내든 해외든 배우들이 제작에 참여하는 게 트렌드기도 하다. 마동석 형님이 적극적으로 작품 제작을 하는데 멋있어 보인다. 나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제작자 송중기보다 배우 송중기를 더 자주 볼 듯 싶다.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 ‘보고타’ 개봉이 남아있고 공포물 출연에 대한 소망도 여전하다. 팬데믹 시기부터 꾸준히 문을 두들겼던 해외 작품 오디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다른 문화권 현장을 그린 작품에 끌리나봐요.해외 오디션도 계속 도전하고 있어요. 학생의 마음으로 문을 두들기고 있죠. 하하”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