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김민규 기자] “야구장에서 할 건 해야죠.”
향정신성의약품을 상습 복용한 혐의로 구속된 오재원(39)이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언·폭행까지 일삼은 ‘악질’ 행태가 세상에 드러났다. 오재원이 강압적으로 약을 모으는 동안 소속팀이던 두산 후배 8명이 희생양이 됐다. 어쩔 수 없이 부정한 일에 가담한 후배들은 고개를 떨궈야했다. 두산 선수들은 가급적 티를 내지 않으려는 듯 평소대로 훈련에 임했다.
23일 두산과 NC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구장은 평소와 다름 없었다. 두산 선수들은 오후 3시경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훈련 시작 전 우측 외야 펜스 앞에서 두산 선수들이 모두 모였다. 두산 ‘캡틴’ 양석환이 무언가 얘기를 한 후 선수들은 본격적으로 몸을 풀고 배팅, 수비 훈련에 들어갔다.
“파이팅” “나이스” 등 이전과 같은 구호는 들리지 않았다. 조금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선수들은 훈련에 집중했다. 전날 불거진 ‘오재원의 악질 만행’에 대한 분통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리고 지난밤 알려진 일을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캡틴’ 양석환은 선수들에게 무슨 얘기를 했을까. 정수빈은 훈련 전 모여서 나눈 얘기에 대해 “(양)석환이가 ‘우리가 야구장에서 할 건 하자’고 말했다. 짚고 넘어갈 문제는 문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고 했다”며 “솔직히 신경은 쓰이지만 똑같이 평소대로 훈련했다”고 밝혔다.
두산 베테랑 포수 양의지는 프로 선수로서 팬들을 위해 야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일은 교훈 삼아 행동 하나하나에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양의지는 “후배들에게 따로 얘기한 것은 없다. 이미 발생한 문제니깐, 개의치 않고 야구에 집중하려고 한다. 우리를 보러 오는 팬을 위해서라도 야구는 계속 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해야 하지 않느냐”며 “다만 우리 후배들이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프로 선수로서 사생활을 더 조심하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승엽 감독은 오재원과 인연이 없지만 ‘현장 책임자’로서 고개를 숙였다. 야구 선배로서 정말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야구계에 이런 일이 벌어져 정말 안타깝다”며 “나를 비롯한 야구계 선배들의 잘못이다.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구단으로부터 ‘(대리 처방을 한 두산 선수들이) 자진 신고를 했고, 구단은 규정과 원칙에 따라서 조처하겠다’고 보고 받았다. 우리 선수들이 이런 문제에 연루돼 안타깝다”며 “구단이 문제를 수습하고 있다. 우리 선수단은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경기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km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