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허명행 감독은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무술감독이었다. ‘신세계’(2013)의 엘리베이터 액션을 비롯해, 두 남자가 정면으로 부딪친 ‘무뢰한’(2015)이나 화려하고 강렬한 ‘아수라’(2016), ‘불한당: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7)까지 액션이 호평받은 작품 대다수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감정의 폭발이 액션으로 터진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인물의 빠른 움직임에 감정을 담아냈다. 그 능력을 일찍이 알아본 마동석이 넷플릭스 ‘황야’와 ‘범죄도시4’로 연출 기회를 부여했다. 부담이 작용했지만, 허 감독은 꿋꿋하게 전진했다.

지난 24일 개봉한 ‘범죄도시4’의 액션 역시 볼거리가 많다. 다소 날렵해진 마석도(마동석 분)의 카운터 펀치나 군더더기 없이 살인을 향해 돌진하는 백창기(김무열 분)의 액션은 시원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안겼다. 장첸(윤계상 분)이나 강해상(손석구 분)에 못지않은 빌런이 탄생했다.

허명행 감독은 “‘황야’를 촬영하고 있을 때 마동석이 ‘범죄도시4’ 연출을 제안했다. 드라마 촬영을 하는 중에 제안을 해줘서 ‘내가 좀 찍나?’라는 생각도 했다. 부담이 있었지만, 누아르풍으로 잘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범죄도시4’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나온 중요한 피드백 중 하나가 강한 빌런이었다. ‘범죄도시3’가 유머는 상당했지만, 투 빌런 체제가 되면서 집중력이 분산됐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허 감독에게 주어진 미션은 마석도에 저항할만한 강한 빌런을 만드는 것이었다.

극 중 최종 빌런인 백창기는 최대한 절제된 태도로 흔들림없이 사람을 죽인다. 예상보다 반 발짝 빨리 행동하는 백창기의 움직임은 공포를 유발했다. 허 감독의 계산이었다.

“빌런 분위기를 강렬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액션의 퀄리티도 높이려고 했죠. 백창기 액션엔 군더더기가 없고 망설임도 없어요. 직진하는 스타일이에요. 화가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화가 난다고 화를 내는 건 1차원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사도 더 많이 뺐어요. 김무열은 어려웠을 테지만, 표정으로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4000만 관객 돌파에 도전하는 ‘범죄도시’ 시리즈는 관객마다 취향이 나뉜다. 각자 좋아하는 편이 다르다. 유머를 즐기면 3편, 빌런의 동물성을 원하면 2편, 공포심을 원한다면 1편이다. 이번엔 스릴러와 범죄에 힘을 많이 줬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범죄 스릴러 파트와 유머 파트가 정확하게 구분돼 있다는 것이다. 패턴이 분명해 이야기 흐름이 너무 쉽게 읽힌다.

“빌런과 형사들의 톤앤 매너가 완전히 다른 영화예요. 백창기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코미디를 줄여야 했어요. 백창기를 더 강하고 멋있게 만들려고 빌런들의 유머를 뺐어요. 예상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이동휘가 연기한 장동철은 빌런의 향기가 짙지만, 결과적으로 마석도와 맞부딪히는 대목이 없다. 장동철은 백창기하고만 갈등을 겪었다. 장동철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띠는 백창기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자극했다. 무력이 서열을 나누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장동철과 백창기는 친구이기도 하고, 장동철은 백창기 위에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고 백창기가 돈을 많이 벌었어요. 도박장 운영하면서요. 차도 비싸고, 한국에 와서 지내는 공간도 매우 좋아요. 장동철은 ‘내 덕에 돈 벌어놓고 감히 날 하대해?’라고 생각할 수 있죠. 또 권사장(현봉식 분) 카드도 있어서, 충분히 백창기를 깔볼 수 있다고 봤어요.”

이번 작품에서 승부수는 장이수(박지환 분)에게 있다. ‘범죄도시2’까지만 해도 불법적인 행동을 자행하던 장이수는 성공한 사업가로 돌아온다. 나쁜 짓도 하지 않는다. 다만 마석도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다닐 뿐이다.

“장이수 때문에 매우 즐거웠다는 분들도 많고, 유머가 약했다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장이수가 한 번쯤은 사업에 성공했으면 했어요. 남루하지도 않고요. 박지환이 매력적이어서인지, 대사를 안 해도 웃는 분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장이수가 얼마나 웃기냐가 흥행의 핵심일 것 같아요.”

무술 감독 출신으로 두 편의 작품을 연출한 허 감독은 개인적으로 제작사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도전하고 있다. 액션보다는 심리 묘사가 짙은 누아르를 준비 중이다. 무술 감독으로서 삶을 유지하면서, 그 이상을 내다보고 있다.

“무술 감독은 일이 끊기지 않는 한 계속하고 싶어요. 좋은 액션 장면을 만드는 건 여전히 흥미로워요. 다만 액션 장르를 연출하고 싶진 않아요. ‘존 윅’ 같은 영화 어떠냐고들 하는데, 제가 120편 넘게 액션을 했거든요. 더 관심 가는 건 드라마 묘사예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을 더 즐기고 재밌어해요. 누아르 장르 작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다음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작품으로 만나 뵙고 싶네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