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정다워 기자]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여자양궁대표팀의 맏언니 전훈영(30·인천시청)은 ‘늦게 핀 꽃’이다. 서른 줄에 접어든 후에야 태극 마크를 달았다. 그전까지는 무명이었다. 베테랑 축에 들어갈 때까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런 전훈영이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가 됐다. 양궁대표팀 일원이 되는 것은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선발 과정 자체가 길고 까다롭다. 1~3차 선발전을 거쳐 최종 8명 안에 들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부 평가전도 거쳐야 한다. 단기간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전훈영은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어렵게 태극 마크를 달았지만 전훈영은 무명이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다. 공교롭게도 전훈영과 함께 국가대표가 된 2005년생 10대 남수현까지 올림픽 멤버가 되면서 ‘경험 부족’이라는 약점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에이스 임시현의 경우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른 선수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전훈영은 그렇지 않았다.
올림픽 개막 전 세계양궁연맹 여자 리커브 랭킹을 보면 임시현이 2위, 전훈영이 21위, 남수현이 61위에 불과하다. 양궁 간판인 강채영(6위), 최미선(7위), 안산(14위)의 공백을 걱정할 만했다.
지난달 파리를 향해 비행기를 타기 전에도 전훈영은 “올림픽에 나선 적이 없어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라는 질문을 받았다. 양궁계 안팎의 우려를 반영한 질문이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한 평가다.
전훈영은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라며 “올림픽 경험은 없지만 월드컵부터 착실하게 잘 준비했다. 걱정하지 않는다.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면 목표를 다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근자감’이 아니었다. 전훈영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의 세트 점수 5-4(56-53 55-54 51-54 53-55 29-27) 승리 및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1번 궁수로 나선 전훈영은 9발 중 무려 6발을 10점에 명중시키며 에이스 역할을 했다. 살 떨리는 슛오프 첫 번째 화살도 10점에 꽂아 중국의 기를 꺾었다. 임시현이 8점을 세 번이나 기록하는 부진 속에서도 한국이 승리한 배경에는 전훈영의 존재가 있다.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경기 중에도 냉정하게 ‘포커 페이스’를 지켰던 전훈영은 금메달이 확정된 후에야 긴장이 풀린 듯 눈물을 보였다. 언니로서 묵묵하게 동생들을 이끌며 포디움 맨 위에 선 기쁨을 마음껏 표출하는 모습이었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전훈영은 밝은 미소로 등장해 “그동안 힘들었던 게 생각나서 눈물이 났지만 너무 행복하다”라면서 “10연패라는 목표가 부담이 되기도 했다. 첫 메인 대회 출전이라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도 됐다. 그래서 더 준비하고 훈련했다”라는 소감을 말했다.
마음에 담아뒀던 진심도 꺼냈다. 그간 무명으로 인해 저평가됐던 전훈영은 “나라도 우려가 될 것 같다”라며 웃은 뒤 “진짜 못 보던 선수 아닌가. 하지만 그 짧지 않은 선발전, 평가전을 다 뚫고 내가 들어왔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어떡하나”라며 모든 선발 과정을 통과한 자신이 올림픽에 올 수밖에 없었다고 여유롭게 말했다. 이어 “공정하게 선발된 것이니 걱정과 우려가 있어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며 준비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