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쿠팡과 CJ제일제당이 1년 8개월 만에 극적으로 화해하고 갈등을 봉합했다.

앞서 쿠팡과 CJ제일제당은 납품가를 두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지난 2022년 12월부터 햇반, 비비고 등 발주를 중단하고, 최근까지 ‘결별’ 상태를 지속해왔다.

그 기간 양사는 협상보다 각자 생존 방향을 모색했다.

CJ제일제당은 중국 이커머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 신세계 유통 3사(이마트·SSG닷컴·G마켓), 컬리 등과 협업해 ‘반(反)쿠팡’ 전선을 구축하고, 쿠팡 또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강화하거나 햇반을 대체할 중소기업 식품을 강화하면서 팽팽한 대립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2년 가까이 이어오던 양사의 ‘햇반 전쟁’ 서사도 볼만하다.

쿠팡은 지난해 6월 중소·중견기업 즉석밥 제품의 판매를 확대하며, 온오프라인 즉석밥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한 햇반에 대응했다. 그러면서 CJ제일제당을 겨냥해 “여러 식품 품목을 독과점해온 대기업 제품이 사라지면서 후발 중소·중견 식품업체들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쿠팡은 당시 햇반 이외에도 CJ제일제당의 주력 상품인 즉석국, 냉동만두 등과 같은 중소·중견기업 상품이 같은 기간 60% 이상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대기업 제품이 빠진 빈자리를 중소·중견기업 제품이 메우며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다분히 CJ제일제당을 겨냥한 발언을 내놓기도 한 것.

이에 CJ제일제당도 지지 않고 쿠팡에 대응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온라인 유통 판매를 다각화해 신제품을 신세계 유통 3사에 선판매하거나, 컬리와 협업해 ‘향긋한 골든퀸쌀밥’을 공동 개발해 컬리 단독 상품으로 판매하는 등 경쟁 이커머스 유통사들과 ‘반(反)쿠팡’ 동맹을 맺으며 대립 양상을 보였다.

특히 CJ제일제당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C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와 손잡고 ‘K베뉴’에 공식 입점해 비비고, 햇반 등을 대폭 할인해 판매하는 등 반쿠팡 세력을 넓혀갔다. 이외에도 자사몰 ‘CJ더마켓’에 익일 배송 서비스인 ‘내일 꼭! 오네’(O-NE) 서비스를 강화해 쿠팡의 로켓배송에 대응하기도 했다.

이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양사가 돌연 햇반 전쟁을 종료하고 14일부터 햇반, 비비고, 스팸 등 CJ제일제당 인기 제품을 로켓배송으로 순차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는 쿠팡이 CJ제일제당으로부터 제품을 직접 매입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우선 CJ제일제당의 제품 가운데 비비고 만두를 비롯해 비비고 김치, 고메 피자 등 냉동·냉장·신선식품 판매가 쿠팡에서 재개된다. 맥스봉 소시지, 맛밤 등 가공·즉석식품뿐 아니라 해찬들 고추장·된장 등 양념류와 백설 식용유, 밀가루, 설탕 등도 모두 쿠팡에서 판매한다.

오는 23일부터는 CJ제일제당의 추석 선물 세트도 쿠팡에서 구매할 수 있다. 다음 달 말이면 CJ제일제당의 주요 브랜드 전체 상품을 쿠팡 로켓 배송을 통해 살 수 있게 된다. 쿠팡 와우 멤버십 회원일 경우 주요 상품을 로켓프레시, 로켓와우를 통해 새벽 배송이나 당일 배송으로 받을 수 있다.

2년 가까이 대치해 오던 양사는 고객들의 고물가 속 장바구니 부담을 덜기 위해 협업을 통해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를 지속해 선보일 계획이다.

◇ 사실, 어쩔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양사가 다시 손을 잡은 건, 서로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반쿠팡 동맹 당시 티몬과도 협력한 바 있는데, 최근 티메프 사태를 빚으면서 급하게 새로운 판매처를 확보해야 했고, 쿠팡은 경쟁 플랫폼들이 자사몰을 강화하고 최근 알리익스프레스가 K베뉴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기존 제품만으로는 지속 우위를 선점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올해 초부터 직거래 재개를 위한 협의를 지속해 왔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소비자 편의를 더 강화하기 위해 쿠팡과 거래를 재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고객이 우리 제품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쿠팡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 관계자는 “고객이 더 다양하고 좋은 품질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소통과 협업을 이어갈 것”이라며 “당사의 로켓배송 물류 인프라와 CJ제일제당의 상품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라고 했다. 앞서 LG생활건강도 쿠팡과 납품가 문제로 상품 직거래를 중단했다가 4년 9개월 만인 지난 1월 중순부터 거래를 재개했다.

◇ CJ올리브영·CJ대한통운은?

이에 따라, CJ그룹 주력 계열사인 CJ올리브영·CJ대한통운과 쿠팡의 관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7월 쿠팡은 헬스앤뷰티(H&B) 국내 1위 업체인 CJ올리브영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쿠팡의 세부적인 신고 내용에 따르면 CJ올리브영이 지난 2019년부터 현재까지 쿠팡의 뷰티 시장 진출을 막고자 뷰티업체에 납품을 하지 말라는 둥 압력을 지속해 거래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 납품 계획을 알린 화장품 업체가 올리브영으로부터 거래 중단, 거래 품목 축소 등의 통보를 받기도 했다“며 “올리브영이 직접 ‘쿠팡 납품 금지 제품군’을 지정해 납품 승인을 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공정위 신고 배경을 설명했다.

CJ올리브영은 이를 두고 쿠팡에 협력사 입점을 제한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쿠팡은 지난해 8월에는 CJ대한통운과 ‘택배 없는 날’ 참여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유통업계 전문가는 “쿠팡과 CJ는 경쟁사이면서도 서로 상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며 “특히 최근 공격적으로 국내 시장을 침투하고 있는 C커머스에 대응하려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공동 발전을 위해 상생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CJ그룹의 주력 계열사들과 쿠팡의 대립을 두고 이번 CJ제일제당과의 화해를 시작으로 관계 개선에 물꼬를 트는게 아니냐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gyuri@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