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대한민국 태권도 ‘자존심’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이 패럴림픽 두 대회 연속 메달을 따냈다. 금메달은 아니지만, 귀하디귀한 동메달을 품었다. 부상을 숨기고 뛰면서 따낸 메달이라 더 놀랍다.
주정훈은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K44 등급(한쪽 팔 장애 중 팔꿈치 아래 마비 또는 절단 장애가 있는 선수가 참가) 80㎏ 이하 동메달 결정전에서 눌란 돔바예프(카자흐스탄)를 7-1로 제압했다. 이로써 주정훈은 2020 도쿄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살 때 오른손을 잃었다. 할머니 집에서 자랐는데 소여물 절단기에 그만 손이 잘렸다. 절단된 손을 찾지 못해 접합 수술을 받지 못했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고교 2학년 때까지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기를 하다가 관뒀다. 이후 주변의 권유로 2017년 말부터 장애인 태권도 선수가 됐다.
이미 주정훈은 역사를 썼다. 2020 도쿄 당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장애인 태권도 종목에 출전했다. 사상 첫 메달까지 따냈다. “최초이면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절치부심하며 파리에 왔다.
이번에도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4강에서 나헤라 루이스 마리오(멕시코)에게 패했다. 7-1로 앞서다 8-8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연장에서 8-10으로 패했다. 크게 아쉬워하는 모습. 그래도 동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냈다.
숨은 이야기가 있다. 부상을 안고 뛰었다. 동메달이 확정된 후 그대로 주저앉았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관중들에게 인사한 후 절뚝이며 내려왔다. 제대로 걷지 못했다. 부축받고 겨우 걸었다. 시상식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주정훈을 부축했다.
주정훈은 “(8강전) 니콜라 스파히치(세르비아)와 경기 중 상대 무릎에 왼쪽 골반을 맞아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뼈와 근육 사이가 너무 아파서 다리가 잘 안 올라갔다”고 털어놨다.
이어 “장애인체육회에서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아낌없이 지원해주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다 걱정하시지 않나.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참고하자는 마음으로 경기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아픈 티를 내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부상 여파가 컸다.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준결승에 나섰다. 넉넉하게 앞서다 역전패. 버티지 못한 셈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통증을 참고 동메달 결정전에 나섰다. 끝내 시상대에 섰다.
주정훈은 “동메달 결정전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김예선 감독님께서 ‘나약한 소리 하지 마라.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정신 차려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혼자 추슬렀다. 마음 정리가 됐다. 동메달 결정전에는 진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하고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 이번 대회를 마치고 은퇴하려고 했다. 2028 LA까지 도전을 이어가겠다. 4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나도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겠다. 후배들 잘 이끌면서 LA에서는 꼭 금메달 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raining99@sportsseoul.com